정지용 시인 / 따알리라
가을 볕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따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 시약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젓가슴과 붓그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약시야, 순하디 순하여 다오. 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 물오리 떠 돌아 다니는 힌 못물 같은 하눌 밑에, 함빡 피어 나온 따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따알리아.
정지용 시인 / 별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어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한에 피어 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에 손을 여미다.
정지용 시인 / 이른 봄 아침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어 들어와 참한 은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라져,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져,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는 싫어라.
쥐나 한 마리 움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새이로 빠알간 산새 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 듯.
새 새끼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 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휘파람이라. 새 새끼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저쪽으로 돌린 푸로우피일-- 패랭이꽃 빛으로 볼그레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깍어 세운 대리석 기둥인 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이글거리는 아침하늘을 일심으로 떠받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띠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오노니, 새 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정지용 시인 / 해바라기씨
해바라기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짹!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시사철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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