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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지용 시인 / 따알리라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8.

정지용 시인 / 따알리라

 

 

가을 볕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따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

시약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젓가슴과 붓그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약시야, 순하디 순하여 다오.

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

물오리 떠 돌아 다니는

힌 못물 같은 하눌 밑에,

함빡 피어 나온 따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따알리아.

 

 


 

 

정지용 시인 / 별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어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한에 피어 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에 손을 여미다.

 

 


 

 

정지용 시인 / 이른 봄 아침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어 들어와

참한 은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라져,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져,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는 싫어라.

 

쥐나 한 마리 움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새이로

빠알간 산새 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 듯.

 

새 새끼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 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휘파람이라.

새 새끼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저쪽으로 돌린 푸로우피일--

패랭이꽃 빛으로 볼그레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깍어 세운 대리석 기둥인 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이글거리는

아침하늘을 일심으로 떠받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띠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오노니,

새 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정지용 시인 / 해바라기씨

 

 

해바라기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짹!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시사철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정지용[鄭芝溶, 1902.5.15 ~ 1950.9.25] 시인

1902년 충북 옥천 에서 출생. 휘문고보 재학 시절《서광》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는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음.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 해방이 되서는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기록되어 있음.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문학독본』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