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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지용 시인 / 종달새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7.

정지용 시인 / 종달새

 

 

삼동 내 ----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지리 지리리 ......

왜 저리 놀려대누.

 

해 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정지용 시인 / 발열

 

 

처마끝에 서린 연기 따러

포도순이 기여 나가는 밤,소리 없이,

가물음 땅에 스며든 더운김이

등에 서리나니 ,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어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정지용 시인 / 오월소식

 

 

오동나무 꽃으로 불밝힌 이곳 첫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어린 나그네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여 오려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 소근거리는구나.

모초롬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설거리나니....

 

나는 갈매기 같은 종선을 한창 치달리고 있다...

 

쾌활한 오월넥타이가 내처 난데없는 순풍이 되여,

하늘과 딱닿은 푸른 물결우에 솟은,

외따른 섬 로만틱을 찾어갈가나.

 

일본말과 아라비아 글씨를 아르키러간

쬐그만 이 페스탈로치야, 꾀꼬리 같은 선생님 이야,

날마다 밤마다 섬둘레가 근심스런 풍랑에 씹히는가 하노니,

은은히 밀려 오는듯 머얼미

 

 


 

 

정지용 시인 / 풍랑몽 2

 

바람은 이렇게 몹시도 부옵는데

저달 영원의 등화!

꺼질 법도 아니하옵거니,

엊저녁 풍랑 우에 님 실려 보내고

아닌 밤중 무서운 꿈에 소스라쳐  

 

 


 

 

정지용 시인 / 비극

 

 

'비극'의 흰 얼굴을 뵈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아름다워라.

검은 옷에 가리어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간 줄을 알았다.

 

그의 발옮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기에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

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드린 일이 있기에

 

혹은 이 밤에 그가

예의를 갖추지 않고 올량이면

문 밖에서 가벼이 사양하겠다.

 

 


 

정지용[鄭芝溶, 1902.5.15 ~ 1950.9.25] 시인

1902년 충북 옥천 에서 출생. 휘문고보 재학 시절《서광》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는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음.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 해방이 되서는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기록되어 있음.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문학독본』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