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 / 단풍
빩안물 짙게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 빩안情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든 시절은 새빩안 우슴을 웃고 새빩안 말을 지줄댄다.
어데 靑春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老死를 앞둔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十月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다. 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한울이 눈부셔한다.
十月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十月단풍도 높다란 낭떨어지에 두서나 나무 깨웃듬이 외로히서서 한들걸이는 것이 기로다.
十月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빩안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백석 시인 / 가무래기의 낙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빚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벼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백석 시인 / 멧새 소리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났다
백석 시인 / 동뇨부
봄철날 한동일내 노곤하니 벌불 장난을 한 날 밤이면 으레히 싸개동당을 지나는데 잘망하니 누워 싸는 오줌이 넓적다리를 흐르는 따끈따끈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
첫 녀름 이른 저녁을 해치우고 인간들이 모두 터앞에 나와서 물외포기에 당콩포기에 오줌을 주는 때 터앞에 발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오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그리고 또 엄매의 말엔 내가 아직 굳은 밥을 모르던 때 살갗 퍼런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것이다
백석 시인 / 선우사(膳友辭) -함주시초(咸州詩抄)
낡은 나보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 밥과 가재미와 나는 무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많은 물 및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 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 벌판새어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없어 히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하나 손아귀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구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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