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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두진 시인 / 변증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5.

박두진 시인 / 변증법

 

 

날개였었지

날개였었지

높디높은 하늘 벽을 위로 부딪쳐

그 울음 혈맥 고운

하얀 새의 넋

새보다 더 먼저는

꽃잎이었었지

소리 아직 처음 일어 발음 없었던

그 침묵 오래 다져

황홀 속에 포개던

꽃잎보다 더 먼저는 햇살이었었지

그랬었지

햇살들이 비로소 꽃잎 형상져

꽃잎마다 새가 되어

하늘 날으던

하나씩의 그림자는 하나씩의 육신

육신이 땅에 태어 사슬 얽매인

벼랑에 그 바위 위에

사슬 얽매인,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어 인신(人身) 그 먼저는

날개였었지

날개였었지

 

 


 

 

박두진 시인 / 강(江) 2

 

 

나는 아직도 잊을수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강물은 숲에서 나와 흐르리.

 

비로소 채색되는 유유(悠悠)한 침묵

꽃으로 수장(水葬)하는 내일에의 날개짓.

 

 

아, 홍건하게 강물은 꽃에 젖어 흐르리

무지개 피에 젖은 아침 숲 짐승 울음.

 

일체의 죽은 것은 떠나게 가리

얼룽대는 배암 비늘 피발톱 독수리의,

 

이리 떼 비둘기 떼 깃죽지와 울대뼈의

피로 물든 일체는 바다로 가리.

 

비로소 햇살 아래 옷을 벗는 너의 전신(全身)

강이여, 강이여, 내일에의 피 몸짓.

 

네가 하는 손짓을 잊을 수가 없어

강 흐름 피무늬길 바다로 간다.

 

시집 '거미와 성좌'(1962)

 

 


 

박두진 [朴斗鎭, 1916.3.10 ~ 1998.9.16] 시인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誌를 통해 등단.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3인 합동시집 『靑鹿集(청록집)』(을유문화사, 1946)을 간행한 뒤 첫 개인시집 『해』를 출간. 이후 『오도』, 『거미와 성좌』, 『인간밀림』, 『고산식물』, 『사도행전』, 『수석열전』, 『속 수석열전』, 『야생대』, 『포옹무한』, 『빙벽을 깬다』 등의 시집과 시론집 『시와 사랑』, 『한국현대시론』 등을 간행.

 3.1문화상 예술상, 인촌상, 지용문학상, 외솔문학상, 동북아기독문학상 등을 수상. 연세대에서 정년퇴임 후 단국대와 추계예대에서 후학 양성. 1998년에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