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돈과 밥과 맘과 들
1
얼굴이면 거울에 비추어도 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비추어도 보지만 어쩌랴 그대여 우리들의 뜻 갈은 백(百)을 산들 한 번을 비출 곳이 있으랴
2
밥먹다 죽었으면 그만일 것을 가지고 잠자다 죽었으면 그만일 것을 가지고 서로가락 그렇지 어쩌면 우리는 툭하면 제 몸만을 내세우려 하더냐 호미 잡고 들에 나려서 곡식이나 기르자
3
순직한 사람은 죽어 하늘나라에 가고 모질던 사람은 죽어 지옥 간다고 하여라 우리네 사람들아 그뿐 알아둘진댄 아무런 괴로움도 다시 없이 살 것을 머리 수그리고 앉았던 그대는 다시 `돈!' 하며 건넌 산을 건너다보게 되누나
4
등잔불 그무러지고 닭소리는 잦은데 여태 자지 않고 있더냐 다심도 하지 그대 요 밤 새면 내일 날이 또 있지 않우
5
사람아 나더러 말썽을 마소 거슬러 예는 물을 거스른다고 말하는 사람부터 어리석겠소
가노라 가노라 나는 가노라 내 성품 끄는 대로 나는 가노라 열두 길 물이라도 나는 가노라
달래어 아니 듣는 어린 적 맘이 일러서 아니 듣는 오늘날 맘의 장본이 되는 줄을 몰랐더니
6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하오 소라도 움마 하고 울지 않소
기면 기라고라도 말을 하오 저울추는 한 곳에 놓인다오
기라고 한대서 기뻐 뛰고 아니라고 한대서 눈물 흘리고 단념하고 돌아설 내가 아니오
7
금전 반짝 은전 반짝 금전과 은전이 반짝반짝
여보오 서방님 그런 말 마오
넘어가요 넘어를 가요 두 손길 마주잡고 넘어나 가세
여보오 서방님 저기를 보오
엊저녁 넘던 산마루에 꽃이 꽃이 피었구려
삼 년을 살아도 몇삼 년을 잊지를 말라는 꽃이라오
그러나 세상은 내 집 길도 한 길이 아니고 열 갈래라
여보오 서방님 이 세상에 났다가 금전은 내 못 써도 당신 위해 천냥은 쓰오리다
동아일보, 1926. 1
김소월 시인 / 마음의 눈물
내 마음에서 눈물 난다. 뒷산에 푸르른 미루나무 잎들이 알지, 내 마음에서, 마음에서 눈물 나는 줄을, 나 보고 싶은 사람, 나 한 번 보게 하여 주소, 우리 작은놈 날 보고 싶어하지, 건넌집 갓난이도 날 보고 싶을 테지, 나도 보고 싶다, 너희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을. 나 하고 싶은 노릇 나 하게 하여 주소. 못 잊혀 그리운 너의 품 속이여! 못 잊히고, 못 잊혀 그립길래 내가 괴로워하는 조선이여.
마음에서 오늘날 눈물이 난다. 앞뒤 한길 포플라 잎들이 안다 마음 속에 마음의 비가 오는 줄을, 갓난이야 갓놈아 나 바라보라 아직도 한길 위에 인기척 있나, 무엇 이고 어머니 오시나 보다. 부뚜막 쥐도 이젠 달아났다.
미발표, 문학사상, 연도 미상
김소월 시인 / 만리성(萬里城)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룻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
진달래꽃, 매문사,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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