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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소월 시인 / 돈과 밥과 맘과 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5.

김소월 시인 / 돈과 밥과 맘과 들

 

 

1

 

얼굴이면 거울에 비추어도 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비추어도 보지만 어쩌랴 그대여 우리들의 뜻 갈은 백(百)을 산들 한 번을 비출 곳이 있으랴

 

2

 

밥먹다 죽었으면 그만일 것을 가지고

잠자다 죽었으면 그만일 것을 가지고 서로가락 그렇지 어쩌면 우리는 툭하면 제 몸만을 내세우려 하더냐 호미 잡고 들에 나려서 곡식이나 기르자

 

3

 

순직한 사람은 죽어 하늘나라에 가고

모질던 사람은 죽어 지옥 간다고 하여라

우리네 사람들아 그뿐 알아둘진댄 아무런 괴로움도 다시 없이 살 것을 머리 수그리고 앉았던 그대는

다시 `돈!' 하며 건넌 산을 건너다보게 되누나

 

4

 

등잔불 그무러지고 닭소리는 잦은데

여태 자지 않고 있더냐 다심도 하지 그대 요 밤 새면 내일 날이 또 있지 않우

 

5

 

사람아 나더러 말썽을 마소

거슬러 예는 물을 거스른다고

말하는 사람부터 어리석겠소

 

가노라 가노라 나는 가노라

내 성품 끄는 대로 나는 가노라

열두 길 물이라도 나는 가노라

 

달래어 아니 듣는 어린 적 맘이

일러서 아니 듣는 오늘날 맘의

장본이 되는 줄을 몰랐더니

 

6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하오

소라도 움마 하고 울지 않소

 

기면 기라고라도

말을 하오

저울추는 한 곳에 놓인다오

 

기라고 한대서 기뻐 뛰고

아니라고 한대서 눈물 흘리고

단념하고 돌아설 내가 아니오

 

7

 

금전 반짝

은전 반짝

금전과 은전이 반짝반짝

 

여보오

서방님

그런 말 마오

 

넘어가요

넘어를 가요

두 손길 마주잡고 넘어나 가세

 

여보오

서방님

저기를 보오

 

엊저녁 넘던 산마루에

꽃이 꽃이

피었구려

 

삼 년을 살아도

몇삼 년을

잊지를 말라는 꽃이라오

 

그러나 세상은

내 집 길도

한 길이 아니고 열 갈래라

 

여보오 서방님 이 세상에

났다가 금전은 내 못 써도

당신 위해 천냥은 쓰오리다

 

동아일보, 1926. 1

 

 


 

 

김소월 시인 / 마음의 눈물

 

 

내 마음에서 눈물 난다.

뒷산에 푸르른 미루나무 잎들이 알지,

내 마음에서, 마음에서 눈물 나는 줄을,

나 보고 싶은 사람, 나 한 번 보게 하여 주소,

우리 작은놈 날 보고 싶어하지,

건넌집 갓난이도 날 보고 싶을 테지,

나도 보고 싶다, 너희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을.

나 하고 싶은 노릇 나 하게 하여 주소.

못 잊혀 그리운 너의 품 속이여!

못 잊히고, 못 잊혀 그립길래 내가 괴로워하는 조선이여.

 

마음에서 오늘날 눈물이 난다.

앞뒤 한길 포플라 잎들이 안다

마음 속에 마음의 비가 오는 줄을,

갓난이야 갓놈아 나 바라보라

아직도 한길 위에 인기척 있나,

무엇 이고 어머니 오시나 보다.

부뚜막 쥐도 이젠 달아났다.

 

미발표, 문학사상, 연도 미상

 

 


 

 

김소월 시인 / 만리성(萬里城)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룻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시인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식이다. 오산 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 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상대를 중퇴했다. 당시 오산 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이 되었다.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