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김현승 시인 / 견고(堅固)한 고독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6.

김현승 시인 / 견고(堅固)한 고독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쓸한 자양(滋養)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현대 문학'(1965) >

 

 


 

김현승[金顯承,1913.2.28 ~ 1975.4.11]시인

1913년 평양에서 출생. 숭실전문학교 졸업.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과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스승 양주동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  《동아일보》 문화란에 발표하며 시문단에 데뷔. 첫시집 『김현승 詩抄』(1957) 이후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 『절대 고독』(1970), 『김현승시선집』(1974) 등의 시집과 평론집 『한국현대시해설』(1972) 등을 간행. 전라남도문화상·서울시문화상 수상. 1975년 작고 후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