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맘에 속의 사람
잊힐 듯이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말 그리운 이 나의 맘에 속에 속 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인제도 인제라도 보기만 해도 다시 없이 살뜰할 그 내 사람은 한두 번만 아니게 본 듯하여서 나자부터 그리운 그 사람이요.
남은 다 어림없다 이를지라도 속에 깊이 있는 것 어찌하는가, 하나 진작 낯 모를 그 내 사람은 다시 없이 알뜰한 그 내 사람은
나를 못 잊어하여 못 잊어하여 애타는 그 사랑이 눈물이 되어, 한끝 만나리 하는 내 몸을 가져 몹쓸음을 둔 사람, 그 나의 사람?
1922. 6
김소월 시인 /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으며 세상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이 꾸밈은 닳아진 이 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두세 번 생각하라, 우선 그것이 저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장사일진댄. 사는 법이 근심은 못 가른다고, 남의 설움을 남은 몰라라. 말 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의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마저 벗긴 뒤에는 그를 네길거리에 세워 놓아라, 장승도 마치 한가지. 이 무슨 일이냐, 그날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가끔 제 비위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기자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르라, 그저 혼자, 섧거나 괴롭거나.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무덤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불그스름한 언덕, 여기저기 돌무더기도 움직이며, 달빛에, 소리만 남은 노래 서러워 엉겨라, 옛 조상들의 기록을 묻어둔 그곳! 나는 두루 찾노라, 그곳에서! 형적 없는 노래 흘러 퍼져,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저기, 그 누구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 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진달래꽃, 매문사,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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