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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소월 시인 / 맘에 속의 사람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6.

김소월 시인 / 맘에 속의 사람

 

 

잊힐 듯이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말 그리운

이 나의 맘에 속에 속 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인제도 인제라도 보기만 해도

다시 없이 살뜰할 그 내 사람은

한두 번만 아니게 본 듯하여서

나자부터 그리운 그 사람이요.

 

남은 다 어림없다 이를지라도

속에 깊이 있는 것 어찌하는가,

하나 진작 낯 모를 그 내 사람은

다시 없이 알뜰한 그 내 사람은

 

나를 못 잊어하여 못 잊어하여

애타는 그 사랑이 눈물이 되어,

한끝 만나리 하는 내 몸을 가져

몹쓸음을 둔 사람, 그 나의 사람?

 

1922. 6

 

 


 

 

김소월 시인 /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으며

세상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이 꾸밈은

닳아진 이 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두세 번 생각하라, 우선 그것이

저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장사일진댄.

사는 법이 근심은 못 가른다고,

남의 설움을 남은 몰라라.

말 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의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마저 벗긴 뒤에는

그를 네길거리에 세워 놓아라, 장승도 마치 한가지.

이 무슨 일이냐, 그날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가끔 제 비위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기자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르라, 그저 혼자, 섧거나 괴롭거나.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무덤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불그스름한 언덕, 여기저기

돌무더기도 움직이며, 달빛에,

소리만 남은 노래 서러워 엉겨라,

옛 조상들의 기록을 묻어둔 그곳!

나는 두루 찾노라, 그곳에서!

형적 없는 노래 흘러 퍼져,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저기,

그 누구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 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시인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식이다. 오산 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 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상대를 중퇴했다. 당시 오산 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이 되었다.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