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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가는 봄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7.

김억 시인 / 가는 봄

 

 

어린 맘아,

오월(五月)의 밤하늘에는 스러져가는 별,

가는 봄철의 저녁에는 떨어지는 꽃,

오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어린 맘아,

봄날의 꽃과 함께, 밤하늘의 별과 함께,

고요하게도 남모르게 넘어가는 청춘(靑春)을

오오 그러나 이를 어쩌랴.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가을

 

 

어제는

아름답게도 첫 봄의 꽃 봉오리가

너의 열락(悅樂) 가득한 장미의 뺨위에

웃음의 향기(香氣)를 프ㅣ우며 떠돌았으나,

 

오늘은

쓸쓸하게도 지는 가을의 낙엽(落葉)이

너의 떨며 아득이는 가슴의 위에

어린 꿈을 깨치며, 비인 듯 흩어지어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갈매기

 

 

신미도(身彌島)라 삼각산(三角山)

갈매기 우네,

갈매기 새끼 잃고

어엽서 우네.

 

별애우 수풀밭에

달빛 밝으면

아바지, 어머니여

새끼가 찾고.

 

가을바람 휘돌아

갈 길은 먼 곳,

새끼를 못 잊어서

어미가 우네.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 시인 / 강(江)가에서

 

 

실버드나무 가지에 새눈이 돋아나오며,

해죽해죽 웃으며 흐르는 강(江)물에 씻기우는

강(江) 두던에는 새 봄의 기운(氣運)이 안개같이 어리울 때,

"나를 생각하라"고, 그대는 속삭이고 갔어라.

넘어가는 새빨간 핏빛의 저녁 노을이,

늦어가는 소녀(少女)의 나물 광주리에서 웃으며,

꿈을 잃은 늙은이의 가슴을 덮어 비추일 때,

"나를 생각하라"고, 그대는 속삭이고 갔어라.

 

악조(樂調)의 고운 꿈길이 두 번 보드라운 바람을 따라,

저멀리 먼 바다를 건너 새 방향(芳香)을 놓는 이 때,

"나를 생각하라"신 그대는 찾기조차 바이 없어라.

밤이면 밤마다, 날이면 날마다 노래 부르며,

물결의 기억(記憶)이 흰 모래밭을 숨어드는 이 때,

"나를 생각하라"신 그대는 찾기조차 바이 없어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

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