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김소월 시인 /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4.

김소월 시인 /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당신이 하도 못 잊게 그리워서

그리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잊히지도 않는 그 사람은

아주나 내버린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가뜩이나 설운 맘이

떠나지 못할 운(運)에 떠난 것도 같아서

생각하면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1923. 5

 

 


 

 

김소월 시인 / 눈 오는 저녁

 

 

바람 자는 이 저녁

흰 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 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 눈은 퍼부어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님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 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닯이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 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담배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났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에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 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 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시인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식이다. 오산 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 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상대를 중퇴했다. 당시 오산 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이 되었다.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