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당신이 하도 못 잊게 그리워서 그리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잊히지도 않는 그 사람은 아주나 내버린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가뜩이나 설운 맘이 떠나지 못할 운(運)에 떠난 것도 같아서 생각하면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1923. 5
김소월 시인 / 눈 오는 저녁
바람 자는 이 저녁 흰 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 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 눈은 퍼부어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님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 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닯이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 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담배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났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에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 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 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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