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의 풀이라도 태웠으면!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낙천(樂天)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남의 나라 땅
돌아다보이는 무쇠다리 얼결에 뛰어 건너 서서 숨 그르고 발 놓는 남의 나라 땅.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널
성촌(城村)의 아가씨들 널뛰노나 초파일날이라고 널을 뛰지요
바람 불어요 바람이 분다고! 담 안에는 수양의 버드나무 채색 줄 층층그네 매지를 말아요
담 밖에는 수양의 늘어진 가지 늘어진 가지는 오오 누나! 휘젓이 늘어져서 그늘이 깊소
좋다 봄날은 몸에 겹지 널뛰는 성촌의 아가씨들 널은 사랑의 버릇이라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눈
새하얀 흰 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진달래꽃, 매문사,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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