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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소월 시인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3.

김소월 시인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의 풀이라도 태웠으면!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낙천(樂天)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남의 나라 땅

 

 

돌아다보이는 무쇠다리

얼결에 뛰어 건너 서서

숨 그르고 발 놓는 남의 나라 땅.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널

 

 

성촌(城村)의 아가씨들

널뛰노나

초파일날이라고

널을 뛰지요

 

바람 불어요

바람이 분다고!

담 안에는 수양의 버드나무

채색 줄 층층그네 매지를 말아요

 

담 밖에는 수양의 늘어진 가지

늘어진 가지는

오오 누나!

휘젓이 늘어져서 그늘이 깊소

 

좋다 봄날은

몸에 겹지

널뛰는 성촌의 아가씨들

널은 사랑의 버릇이라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눈

 

 

새하얀 흰 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시인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식이다. 오산 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 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상대를 중퇴했다. 당시 오산 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이 되었다.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