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윤곤강 시인 / 찬 달밤에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3.

윤곤강 시인 / 찬 달밤에

 

 

달하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정읍사(井邑詞)에서

 

찬 달 그림자 밟고

발길 가벼이 옛 성터 우헤

나와 그림자 짝지어 서면

괼 이도 믤 이도 없은 몸하!

누리는 저승보다도 다시 멀고

시름은 꿈처럼 덧없어라

 

어둠과 손잡은 세월은

주린 내 넋을 끄을고 가노라

가냘픈 두 팔 잡아끄을고 가노라

내사 슬픈 이 하늘 밑에 나서

행여 뉘 볼세라 부끄러워라

마음의 거울 비취오면 하온 일이 무에뇨

 

어찌 하리오 나에겐 겨레 위한

한 방울 뜨거운 피 지녔기에

그예 나는 조바심에 미치리로다

허망하게 비인 가슴 속에

끝 모르게 흐르는 뉘우침과 노여움

아으 더러힌 이 몸 어느 데 묻히리이꼬

 

<피리, 정읍사, 1948>

 

 


 

윤곤강(尹崑崗) 시인 / 1909~1949

충남 서산에서 출생. 보성 고보를 거쳐 연희 전문 학교에서 수학, 1934년경 경향파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는데 퇴폐적 사조와 풍자적 경향의 시를 썼다. 광복 후에 그의 시는 많이 안정되어 고려 가요의 율조와 민족적 정서의 탐구로 발전하였다. 동인지 <시학>을 주재했으며, 보성 중학교 교사와 중앙 대학 교수, 성균관 대학 강사를 지냈다. 시집에 <대지> <만가> <피리> <동물 시집> 살어리>, 시론집에 <시와 진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