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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찬일 시인 / 나비를 보는 고통 a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1.

박찬일 시인 / 나비를 보는 고통 a

 

 

  혼자서 날아다니다가

  흙에서, 흙에서 뒹굴다 죽는 나비여.

 

  날개가 아니라 몸뚱어리라는 것을.

  그가 날개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것을.

  내 진작 알았더라면

 

  날개란 몸뚱어리에 붙은 어떤 것이라는 것을.

  내 진작 알았더라면

 

  몸뚱어리가 죽으면

  날개도 따라 접힌다는 것을.

  내 진작 알았더라면

 

  혼자 다니다가

  흙에 뒹굴다, 흙에 뒹굴다 죽는 나비에

  나비의 운명에

  내 가까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집 『나비를 보는 고통』(문학과지성사, 1999) 중에서

 

 


 

 

박찬일 시인 / 나비를 보는 고통 d

 

 

하늘에 날개가 닿았다

꺼칠꺼칠한 곳이 있었고 말랑말랑한 곳이 있었다

말랑말랑한 곳에 걸쳐 앉았다

바깥에서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침을 발라, 구멍을 뚫고, 보니까

하늘 바깥에

하늘이 있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그동안 헛고생한 것이다

하늘에 가면 다 가는 줄 알았는데

到達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늘 바깥에 또 하늘이 있었다니

길 떠나지 말라고 한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걸까

하느님이 둘 이상이라는 것을

 

시집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문학에디션 뿔, 1999) 중에서

 

 


 

 

 박찬일 시인

춘천에서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에 〈무거움〉, 〈갈릴레오〉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 연세대학교 독문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독일 카셀대학에서 수학.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시론집으로 『해석은 발명이다』, 『사랑, 혹은 에로티즘』, 『근대: 이항대립체계의 실제 』, 『박찬일의 시간 있는 아침』, 연구서로 『독일 대도시

시 연구』, 『시를 말하다』, 『브레히트 시의 이해』 등이 있음. 박인환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