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령 시인 / 시인하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2.

이령 시인 / 시인하다

 

 

난 말의 회랑에서 뼈아프게 사기 치는 책사다.

바람벽에 기댄 무전취식 속수무책 말의 어성꾼이다.

집요할수록 깊어지는 복화술의 늪에 빠진 허무맹랑한 방랑자다.

 

자 지금부터 난 시인(是認)하자.

 

내가 아는 거짓의 팔 할은 진지모드.

그러므로 내가 아는 시의 팔 할은 거짓말.

그러나 내가 아는 시인의 일할쯤은

거짓말로 참 말하는* 언어의 술사들.

 

그러니 난 시인(詩人)한다.

 

관중을 의식하지 않기에 원천무죄지만

간혹 뜰에 핀 장미에겐 미안하고

해와 달 따위가 따라붙어 민망하다.

날마다 실패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이 원죄이며

사기를 시기하고 사랑하고 책망하다 결국 동경하는 것이 여죄다.

사기꾼의 표정은 말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러니 詩人의 是認은 속속들이 참에 가깝다.

 

*장콕토

 

월간 『시와 표현』 2017년 4월호 발표

 

 


 

이령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13년 《시사사》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2015년 한중작가 공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와 2018년 시집『시인하다』 출간.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이며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