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령 시인 / 시인하다
난 말의 회랑에서 뼈아프게 사기 치는 책사다. 바람벽에 기댄 무전취식 속수무책 말의 어성꾼이다. 집요할수록 깊어지는 복화술의 늪에 빠진 허무맹랑한 방랑자다.
자 지금부터 난 시인(是認)하자.
내가 아는 거짓의 팔 할은 진지모드. 그러므로 내가 아는 시의 팔 할은 거짓말. 그러나 내가 아는 시인의 일할쯤은 거짓말로 참 말하는* 언어의 술사들.
그러니 난 시인(詩人)한다.
관중을 의식하지 않기에 원천무죄지만 간혹 뜰에 핀 장미에겐 미안하고 해와 달 따위가 따라붙어 민망하다. 날마다 실패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이 원죄이며 사기를 시기하고 사랑하고 책망하다 결국 동경하는 것이 여죄다. 사기꾼의 표정은 말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러니 詩人의 是認은 속속들이 참에 가깝다.
*장콕토
월간 『시와 표현』 2017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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