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시인 / 우리들 모두의 꿈이 아니냐
순(順)이 준 꽃병과 팔뚝의 크롬시계사 내 것이지만 아― 저 푸른 넓은 하늘이야 난(蘭)의 것도 영(英)의 것도 내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하늘이 아니냐
들을 보아라 그러고 바다를 해당화 수놓은 백사장 넘실거리는 보리 이삭 벼초리 아청 바다에 연이은 초록빛 벌판은 아― 영(英)의 것도 난(蘭)의 것도 아닌 우리들 모두의 것이 아니냐
하룻밤 무언가 한없이 아름다운 꿈을 꾸다가 눈을 떴더니 무슨 진주나 잃은 것처럼 몹시도 서글픔은 모두 즐겁고 살찌고 노래하고 나무라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 아― 그것은 난(蘭)의 것도 영(英)의 것도 내 것도 아닌 우리들 모두의 꿈이었고나
바다도 산도 꿈도 아― 저 넓은 하늘이야 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 모두의 것이 아니냐 모두 즐겁고 살찌고 노래하며 영(英)이도 난(蘭)이도 순(順)이도 나도 함께 살 나라의 하늘과 들과 바다와 꿈이 아니냐
새노래, 아문각, 1948
김기림 시인 / 우리들의 악수
일만 가슴인데 만으로 천만인 가슴인데 한 갈래로 울리는 신기한 울림은 막을래 막을 수 없는 울림은 무엇이냐 별보다도 확실한 걸음걸이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굽힐 수 없는 강철의 궤도를 구르는 쇠바퀴리라
함부르그 룩쌍부―르 로잔느 카이로 칼캇타 하노이 쉬카고와 에딘바라 거리를 무시하는 날랜 전파 핏줄과 같이 화끈한 것은 황혼에 빛나는 한 떨기 장미 같은 웃음 내일에 부치는 약속이리라
무너져 가는 제국 관절이 부은 자본주의 피샤의 탑을 지탱하는 물리학도 드디어 건질 수 없는 기울어지는 것들의 운명이다 만 가슴 만만 가슴을 견딜 수 없이 구르는 것은 미래로 뻗은 두 줄기 빛나는 강철 보랏빛 미명에 감기운 길이다
우리들의 악수는 내일 한바퀴 지구가 돌아간 곳에서 하자
새노래, 아문각, 1948
김기림 시인 / 인민공장(人民工場)에 부치는 노래
검은 연기를 올려 은하라도 가려 버려라 그러나 샛별만은 남겨 두어라
창마다 뿜는 불길은 어둠을 흘기는 우리들의 눈짓 지금은 한구석이나
머지 않아 모두가 돌아 가겠지 다만 제일 소중한 것을 저버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팔월(八月)이 가져 왔던 저 큰 희망 말이다
그대 옆에 용광로는 꺼지지 않았느냐 그대 앞에 화통은 달은 대로 있느냐 그것이 꺼지면 우리들의 심장도 꺼진다
선반에 다가서자 희망 곁에 가까이 있자 피대(皮帶)와 치륜(齒輪)마다 우리들의 체온을 돌리자 힘있게 살고 있으며 자라난다고 새벽에 싸이렌을 울리자 동트기 전에 뚜―를 울리자
새노래, 아문각,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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