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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지용 시인 / 석류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4.

정지용 시인 /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정지용 시인 / 호면

 

 

손바닥 울리는 소리

곱드랗게 건너간다

 

그 뒤로 흰게우가 미끄러져 간다

 

 


 

 

정지용 시인 / 湖水(호수) 1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시집 :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정지용 시인 / 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 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 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르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정지용 시인 /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별똥은 본 적이 없다

난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별똥 떨어진 곳에 가보고 싶다

내 눈에도 보였으면…

 

 


 

 

정지용 시인 / 새빨간 기관차

 

 

으으릿 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 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 달려가자.

두뺨에 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 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 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 휘잉. 휘잉.

만틀 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 풀. 풀.

붕어새끼 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 기관차처럼 달려가자!

 

 


 

정지용[鄭芝溶, 1902.5.15 ~ 1950.9.25] 시인

1902년 충북 옥천 에서 출생. 휘문고보 재학 시절《서광》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는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음.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 해방이 되서는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기록되어 있음.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문학독본』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