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 /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정지용 시인 / 호면
손바닥 울리는 소리 곱드랗게 건너간다
그 뒤로 흰게우가 미끄러져 간다
정지용 시인 / 湖水(호수) 1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시집 :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정지용 시인 / 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 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 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르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정지용 시인 /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별똥은 본 적이 없다 난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별똥 떨어진 곳에 가보고 싶다 내 눈에도 보였으면…
정지용 시인 / 새빨간 기관차
으으릿 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 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 달려가자. 두뺨에 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 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 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 휘잉. 휘잉. 만틀 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 풀. 풀. 붕어새끼 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 기관차처럼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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