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백석 시인 / 삼호(三湖)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3.

백석 시인 / 삼호(三湖)

― 물닭의 소리 1

 

 

문기슭에 바다해자를 까꾸로 붙인 집

산듯한 청삿자리 우에서 찌륵찌륵

우는 전북회를 먹어 한녀름을 보낸다

이렇게 한녀름을 보내면서 나는 하늑이는

물살에 나이금이 느는 꽃조개와 함께

허리도리가 굵어가는 한 사람을 연연해 한다

 

 

창삿자리 : 푸른 왕골로 짠 삿자리

전북회 : 전복회. 전복과에 속하는 조개의 살을 회로 만든 것

하늑이는 : 하느적거리는. 가늘고 길고 부드러운 나뭇가지 같은 것이 계속하여 가볍고 경쾌하게 흔들 리는 모양.

나이금 : 나이테. 연륜.

연연해 한다 : 잊혀지지 않고 안타깝게 그리워한다

 

 


 

 

백석 시인 / 물계리(物界里)

― 물닭의 소리 2

 

 

물계리(物界里) 물밑 ― 이 세모래 닌함박은 콩조개만 일다

모래장변 ― 바다가 널어놓고 못믿없어 드나드는

명주필을 짓궂이 발뒤축으로 찢으면

날과 씨는 모두 양금줄이 되어

짜랑짜랑 울었다

 

 

물계리 : 함경도 해안가의 백사장

세모래 : 가늘고 고운 모래

닌함박 : 이남박. 쌀같은 것을 씻어 일 때 쓰는 안턱에 이가 서게 여러 줄로 돌려 판 함지박의 하나. 쌀을 일 때 쓰이는 바가지의 일종.

모래장변 : 모래가 운동장을 이룬 듯이 넓다란 모래 벌판

콩조개 : 아주 작은 조개.

날 : 세로로 놓은 실

씨 : 가로로 놓은 실

양금(洋琴) : 국악에서 쓰는 현악기의 한 가지. 네모 모양의 나무판에 열네개의 쇠줄을 매고, 채로 쳐서 소리를 냄. 사다리꼴의 넓적한 오동나무 통 위에 56개의 줄로 이어진 현악기.

 

 


 

 

백석 시인 / 대산동(大山洞)

― 물닭의 소리 3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말이다

저 건너 노루섬에 노루없드란 말이지

신미도 삼각산엔 가무래기만 나드란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말이다

푸른 바다 힌한울이 좋기도 좋단 말이지

해밝은 모래장변에 돌비 하나 섰단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말이다

눈빨갱이 갈매기 발빨갱이 갈매기 가란말이지

승냥이처럼 우는 갈매기

무서워 가란 말이지

 

 

비얘고지 : 증봉동 근처에 있는 마을. 정확히는 덕언면 신창동으로 옛날에는 '비파부락'이라고 불렀음. 그러나 여기서는 제비의 지저귐 소리로 파악 된다. 시인이 비애고지라는 마을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쓴 의성어로 볼 수 있다.

노루섬 : 정주읍에서 남서쪽으로 10리 거리의 바다건너 섬으로 내장도(內獐島),외장도(外獐島)를 지칭.

신미두 : 평북 신천군 운종면(雲從面)에 속한 큰 섬. 조기의 명산지이기도 함.

가무래기 : 새까맣고 동그란 조개. 가무락조개

돌비 : 돌로 세운 비석.

 

 


 

 

백석 시인 / 남향(南鄕)

― 물닭의 소리 4

 

푸른 바다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이다

 

아이들은 늘늘히 청대나무말을 몰고

대모풍잠한 늙은이 또요 한 마리를 드리우고 갔다

 

이 길이다

 

얼마 가서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마을 하이얀 회담벽에 옛적본의

장반시게를 걸어놓은 집 홀어미와 사는 물새 같은 외딸의 혼사 말이 아지랑이같이 낀곳은

 

 

늘늘히 : 휘늘어진 것에 줄줄이 붙은 모습을 말함

청대나무말 : 다 자란 푸른 대나무를 어린아이들이 놀이도구로 사용하여 가랑이에 넣고끌고 다니는 말. 잎이 달린 아직 푸른 대나무를 어린이들이 말이라 하여 가랑이에 넣어서 끌고 다니며 노는 죽마

대모풍잠 : 대모갑으로 만든 풍잠.

대모갑 : 바다거북의 등껍질

풍잠 : 망건의 당 앞쪽에 꾸미는 물건. 쇠뿔, 대모, 금패 같은 것으로 원산모양으로 만듦. 갓 모자가 걸리어 바람에 뒤쪽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느라고 꾸밈.

또요 : 도요새. 도요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 강변의 습기 많은 곳에 살고 다리, 부리가 길며 꽁지가 짧음.

회담벽 : 회벽으로 된 담벽

옛적본 : 옛날 스타일의

장반시계 : 쟁반같이 생긴 둥근 시계.

 

 


 

 

백석 시인 / 야우소회(夜雨小懷)

― 물닭의 소리 5

 

 

캄캄한 비 속에

새빨간 달이 뜨고

하이얀 꽃이 퓌고

먼바루 개가 짖는밤은

어데서 물의 내음새 나는밤이다

 

캄캄한 비 속에

새빨간 달이 뜨고

하이얀 꽃이 퓌고

먼바루 개가 짖고

어데서 물의 내음새 나는 밤은

 

나의 정다운 것들 가지, 명태, 노루, 뫼추리, 질동이, 노랑나비, 바구지꽃, 메밀국수, 남치마, 자개짚섹이, 그리고 천희(天姬)라는 이름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밤이로구나

 

 

먼바루 : 먼발치기.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는 곳에

물외 : 오이

질동이 : 질그릇 만드는 흙으로 구워 만든 동이

남치마 : 남색치마

자개짚섹이 : 작고 예쁜 조개껍데기들을 주워 짚신에 그득히 담아 두는것.

 

 


 

백석(白石) 시인 (1912.7.1~1995)

본명 백기행(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하였다. 오산(五山)중학과 일본 도쿄[東京]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였다. 조선일보사 출판부를 근무하였으며,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통영(統營)》 《고향》 《북방(北方)에서》 《적막강산》 등 대표작은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은 서정시들이다.

지방적·민속적인 것에 집착하며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 시인으로,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머물렀다. 1963년을 전후하여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자에 의해 사망연도가 1995년임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