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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지용 시인 / 인동차(忍冬茶)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3.

정지용 시인 / 인동차(忍冬茶)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 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 잠착(潛着)하다 :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골똘하게 쓰다.

 

({문장} 22호, 1941.1)

 

 


 

 

정지용 시인 / 슬픈 인상화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 저녁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 슨

전등.전등.

 

헤엄쳐 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향의 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득이는

세관의 깃 발.깃 발.

 

세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랑쥬 껍질 씨비는 시름....

 

아아, 에시리. 황

그대는 상해로가는구료....

 

 


 

 

정지용 시인 / 옥류동(玉流洞)

 

 

골에 하늘이

따로 트이고,

 

瀑布 소리 하잔히

봄우뢰를 울다.

 

날가지 겹겹히

모란꽃닙 포기이는듯.

 

자위 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히 솟은 봉오리들.

 

골이 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嵐)가 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 묻힌양 날러올라

나래 떠는 해.

 

보라빛 해ㅅ살이

幅지어 빗겨 걸치이매,

 

기슭에 藥草들의

소란한 呼吸 !

 

들새도 날러들지 않고

神秘가 한끗 저자 선 한낮.

 

물도 젖여지지 않어

흰돌 우에 따로 구르고,

 

닥어 스미는 향기에

길초마다 옷깃이 매워라.

 

귀또리도

흠식 한양

 

옴짓

아니 한다.

 

 


 

 

정지용 시인 / 홍춘(紅椿)

 

 

椿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 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펴

아름 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정지용 시인 / 엽서에 쓴 글

 

 

나비가 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하고

이 종이ㅅ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 한동안 파다거리오리다.

──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 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 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 함추름 휘적시고 왔오.

──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 검은 이밤이 다 희도록

참한 뮤─ 쓰처럼 주무시압.

해발 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젠 바람이 나려옵니다.

 

 


 

정지용[鄭芝溶, 1902.5.15 ~ 1950.9.25] 시인

1902년 충북 옥천 에서 출생. 휘문고보 재학 시절《서광》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는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음.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 해방이 되서는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기록되어 있음.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문학독본』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