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 / 인동차(忍冬茶)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 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 잠착(潛着)하다 :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골똘하게 쓰다.
({문장} 22호, 1941.1)
정지용 시인 / 슬픈 인상화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 저녁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 슨 전등.전등.
헤엄쳐 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향의 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득이는 세관의 깃 발.깃 발.
세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랑쥬 껍질 씨비는 시름....
아아, 에시리. 황 그대는 상해로가는구료....
정지용 시인 / 옥류동(玉流洞)
골에 하늘이 따로 트이고,
瀑布 소리 하잔히 봄우뢰를 울다.
날가지 겹겹히 모란꽃닙 포기이는듯.
자위 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히 솟은 봉오리들.
골이 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嵐)가 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 묻힌양 날러올라 나래 떠는 해.
보라빛 해ㅅ살이 幅지어 빗겨 걸치이매,
기슭에 藥草들의 소란한 呼吸 !
들새도 날러들지 않고 神秘가 한끗 저자 선 한낮.
물도 젖여지지 않어 흰돌 우에 따로 구르고,
닥어 스미는 향기에 길초마다 옷깃이 매워라.
귀또리도 흠식 한양
옴짓 아니 한다.
정지용 시인 / 홍춘(紅椿)
椿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 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펴 아름 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정지용 시인 / 엽서에 쓴 글
나비가 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하고 이 종이ㅅ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 한동안 파다거리오리다. ──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 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 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 함추름 휘적시고 왔오. ──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 검은 이밤이 다 희도록 참한 뮤─ 쓰처럼 주무시압. 해발 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젠 바람이 나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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