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 /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늬는 내 귀가 좋으냐? 늬는 내 코가 좋으냐? 늬는 내 손이 좋으냐?
내사 왼통 빨개졌네. 내사 아무치도 않다. 호호 칩어라 구보로!
정지용 시인 / 내맘에 맞는 이
당신은 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옛사람 처럼 사람 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 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 쥐고 뺑뺑이 치다 절 한 번만 합쇼.
호.호.호.호. 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 타신 당신이 쌍무지개 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 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를 부르지요.
[앞으로----가.요.]
[뒤로--가.요.]
키는 후리후리. 어깨는 산고개 같어요.
호.호.호.호. 내 맘은 맞는이.
정지용 시인 / 조약돌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앓은 페에로의 설움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 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정지용 시인 / 바다 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정지용 시인 / 바다 2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 …… 펴고 …….
({시원} 5호, 1935.12)
정지용 시인 / 바다 3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 온다.
정지용 시인 / 바다 4
후주근한 물결소리 등에 지고 홀로 돌아가노니 어데선지 그누구 쓰러져 울음 우는듯한 기척,
돌아서서 보니 먼 등대가 반짝 반짝 깜박이고 갈매기떼 끼루룩 비를 부르며 날어간다.
울음 우는 이는 등대도 아니고 갈매기도 아니고 어덴지 홀로 떨어진 이름 모를 서러움이 하나.
정지용 시인 / 바다 7
바다는 푸르오,
모래는 희오, 희오,
수평선 우에 살포-시 내려앉는 정오 하늘,
한 한가운데 돌아가는 태양,
내 영혼도 이제 고요히 고요히 눈물겨운 백금 팽이를 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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