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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화 시인 / 식물성 오후
버스를 타려고 언덕을 내려갈 때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힘겹게 서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다 꽃도 다 시들어버린 목련나무 옆에서 수직으로 내리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오래 걸어왔던 걸음이 제 그림자에 갇혀있다
분주함도 사라지고 야성적 본능이 식물성으로 순해지는 시간 미련이 없으면 저항도 없다
조금씩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그 노인 물끄러미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저 무심함이 품고 있는 견고한 내력들
걷지 않는 발은 뿌리가 된다
나무가 되어가는 노인과 죽어야 비로소 걷는 나무가 한 몸이 되어있는
나 한때 저 목련나무의 꽃으로 핀 적이 있다
계간 『시산맥』 2010년 상반기호 발표
정용화 시인 / 집중의 힘
알고 보면, 꽃은 계절이 불러 모은 허공이다. 지상을 향한 땅의 집중이다. 흩어지는 것이 거부의 형식이라면 피워내는 것은 모서리를 견뎌낸 침묵의 힘이다.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나무는 땅 속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에 집중한다. 상처가 있던 자리마다 꽃이 피어난다. 꽃은 어둠 속에서 별이 떨어뜨린 혁명이다. 꽃으로 피어 있는 시간,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 날개에 집중한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새들의 울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온 몸이 귀가 되어 집중할 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때로는 어긋난 대답처럼 꽃 진자리마다 잎새 뒤에 숨어서 가을은 열매에 집중한다. 알고 보면, 열매는 화려한 기억들을 끌어 모아 가을을 짧게 요약한다
세상에서 집중없이 피어난 꽃은 없다고 너는 우주의 집중으로 피워낸 꽃이다
월간 『현대시』 2009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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