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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시인 / 몸 속에 시계를 달다
새벽 6시면 알람시계가 울린다 하룻동안의 삶에 자신이 없는 나는 시계소리 한 알을 삼킨다 둥글고 매끄러운 시그너스 시계 캡슐이 몸에 들어오면서부터 아침이 시작된다 몸 속의 시계는 쉬지 않고 약물을 퍼트리며 나를 데리고 어디로든 가려고 한다 몸과 마음은 시계에 갇힌 채 시계바늘을 따라서 둥근 세상을 돈다 시계는 제가 정한 처방대로 나를 이끈다 밥을 먹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나를 재촉한다 내안의 시계는 시간의 경계가 확실치 않아서 슬픔 너머 저쪽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거나 희망 언저리를 따뜻하게 데우기도 한다 약효가 소모 될 때쯤이면 시계에 의지했던 하루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내일 삼키게 될 알약을 다시 준비한다
시집 『햇살 마름질』(서정시학, 2011) 중에서
김선호 시인 / 노선을 이탈한 버스
블라디보스톡에서 312번 신설동행 버스를 만났다 서울에서 기다릴 땐 좀처럼 오지 않던 노선 버스가 쓸쓸한 바람이 무차별적으로 불어오는 광장에서 말을 걸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자 노선표도 안 뗀 현대자동차 마크가 선명하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중곡동과 신설동을 오고가는 순하디순한 글씨 쇄빙선이 깨어 놓은 얼음길을 따라 먼 바다를 건너오느라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다 날을 세운 바람들이 눈보라를 일으키는 바람 사태에 바퀴는 단단히 부풀어 올랐다 이곳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불모의 땅으로 강제 이주당한 할아버지처럼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다 생의 북쪽에 이처럼 따뜻한 기다림이 있냐고 신설동과 블라디보스톡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는 사이 버스는 느릿느릿 내 곁을 지나간다 길이 시작되는 항구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집 『햇살 마름질』(서정시학,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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