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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현채 시인 /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

이현채 시인 /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에게 자리를 내 주도록

 

 

그리하여 생은

울퉁불퉁한 빗방울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빗방울은 모두 어디로 갔나. 빗방울이 떨어진다. 빗방울은 빗방울을 낳고. 배신당한 유언들의 웃음과 망각의 책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떠도는 나는 유령인가. 유월의 일요일이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나는 늘 어둠과 어둠 사이에서 잠시 빛을 발하며 살아갈 뿐. 비가 올 때마다 울컥, 울컥하는 한 그루 외로운 나무다. 사라진 밤들과 다가올 밤들 앞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무소르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들으며 한 인간의 생애를 한 장 한 장 읽어낸다. 공포로 가득 찬 비밀의 문은 열리지 않고, 복수를 맹세한 그날 나는 왜 심장을 떼버리지 못했던가.

 

세상 사람의 반은 울고 반은 웃는다. 유월의 하늘이 비스듬히 내려앉는다. 내 옆에서 걷는 자는 누구인가. 어느 시인의 죽음 앞에서 웃고 우는 가련한 사람들, 연속성 의식 죽음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사소한 힘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불평등, 어둠 속에서 나온 속임수, 키치의 저속성과 반복되는 부끄러움의 시간을 찾아서 용산 경찰서 앞 신호등이 껌뻑거리고 무덤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낯선 사람들, 폭발하는 괴물들이 빙산처럼 쏟아져 나오고 찢어진 커튼을 드리운다.

 

*

 

이리와, 안아줘.

빗방울은 쉼 없이 창문을 두드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이현채 시인

당진에서 출생. 2008년 《창작21》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지혜사랑, 201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