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동으로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동으로 맘 없이 걸어가면 놀래는 청령,
들꽃 풀 보드라운 향기 맡으면 어린 적 놀던 동무 새 그리운 맘
길다란 쑥대 끝을 삼각(三角)에 메워 거미줄 감아 들고 청령을 쫓던,
늘 함께 이 동 위에 이 풀숲에서 놀던 그 동무들은 어디로 갔노!
어린 적 내 놀이터 이 동마루는 지금 내 흩어진 벗 생각의 나라.
먼 바다 바라보며 우둑히 서서 나 지금 청령 따라 왜 가지 않노.
학생계, 1920. 7
김소월 시인 / 고독(孤獨)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 시만 늘 저무누나
바잽의 모래밭에 돋는 봄풀은 매일 붓는 벌불에 터도 나타나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은요 봄 와도 봄 온 줄을 모른다더라
이즘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늘도 지는 해니 어서 져 다오 아쉬움의 바닷가 모래밭이니 뚝 씻는 물소리가 들려나 다오
신여성, 1931. 2
김소월 시인 / 고적(孤寂)한 날
당신님의 편지를 받은 그날로 서러운 풍설(風說)이 돌았습니다.
물에 던져 달라고 하신 그 뜻은 언제나 꿈꾸며 생각하라는 그 말씀인 줄 압니다.
흘려 쓰신 글씨나마 언문 글자로 눈물이라고 적어 보내셨지요.
물에 던져 달라고 하신 그 뜻은 뜨거운 눈물 방울방울 흘리며, 맘 곱게 읽어 달라는 말씀이지요.
1922. 7
김소월 시인 / 공원(公園)의 밤
백양 가지에 우는 전등은 깊은 밤의 못물에 어렷하기도 하며 어득하기도 하여라. 어둡게 또는 소리 없이 가늘게 줄줄의 버드나무에서는 비가 쌓일 때.
푸른 그늘은 낮은 듯이 보이는 긴 잎 아래로 마주 앉아 고요히 내리깔리던 그 보드라운 눈길! 인제, 검은 내는 떠돌아 올라 비구름이 되어라 아아 나는 우노라 `그 옛적의 내 사람!'
192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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