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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지용 시인 / 슬픈 우상(偶像)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30.

정지용 시인 / 슬픈 우상(偶像)

 

 

이밤에 安息하시옵니까.

내가 홀로 속에ㅅ소리로 그대의 起居를 問議할삼어도 어찌 홀한 말로 붙일법도 한 일이오니까.

 

무슨 말슴으로나 좀더 높일만한 좀더 그대께 마땅한 言辭가 없사오리까.

 

눈감고 자는 비달기보담도, 꽃그림자 옮기는 겨를에 여미며 자는 꽃봉오리 보담도, 어여삐 자시올 그대여 !

 

그대의 눈을 들어 푸리 하오리까.

속속드리 맑고 푸른 湖水가 한쌍.

밤은 함폭 그대의 湖水에 깃드리기 위하야 있는 것이오리까.

내가 감히 金星노릇하야 그대의 湖水에 잠길법도 한 일이오리까.

 

단정히 여미신 입시울, 오오, 나의 禮가 혹시 흩으러질가하야 다시 가다듬고 푸리 하겠나이다.

 

여러 가지 연유가 있사오나 마침내 그대를 암표범처럼 두리고 嚴威롭게 우러르는 까닭은 거기 있나이다.

 

 


 

 

정지용 시인 / 소곡(小曲)

 

 

물새도 잠들어 깃을 사리는

이아닌 밤에,

 

明水臺 바위틈 진달래 꽃

어찌면 타는듯 붉으뇨.

 

오는 물, 가는 물,

내쳐 보내고, 헤여질 물

 

바람이사 애초 못믿을손,

입마추곤 이내 옮겨가네.

 

해마다 제철이면

한등걸에 핀다기소니,

 

들새도 날러와

애닯다 눈물짓는 아츰엔,

 

이울어 하롱 하롱 지는 꽃닢,

설지 않으랴, 푸른물에 실려가기,

 

아깝고야, 아긔 자긔

한창인 이 봄ㅅ밤을,

 

초ㅅ불 켜들고 밝히소.

아니 붉고 어찌료.

 

 


 

 

정지용 시인 /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어디러뇨.

 

동녘에 피어있는 들국화 웃어주는데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보노라.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옛 추억

가슴아픈 그 추억 더듬지 말자

내 가슴엔 그리움이 있고

나의 웃음도 연륜에 사라졌나니

내 그것만 가지고 가노라.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고향은 없어

진종일 진종일 언덕길 헤메다 가네.

 

 


 

 

정지용 시인 / 곡마단(曲馬團)

 

 

疎開터

눈 우에도

춥지 않은 바람

 

클라리오넽이 울고

북이 울고

천막이 후두둑거리고

旗가 날고

야릇이도 설고 흥청거러운 밤

 

말이 달리다

불테를 뚫고 넘고

말 우에

기집아이 뒤집고

 

물개

나팔 불고

 

그네 뛰는게 아니라

까아만 空中 눈부신 땅재주!

 

甘藍 포기처럼 싱싱한

기집아이의 다리를 보았다

 

力技選手 팔장 낀채

외발 自轉車 타고

 

脫衣室에서 애기가 울었다

草綠 리본 斷髮머리 째리가 드나들었다.

 

원숭이

담배에 성냥을 키고

 

防寒帽 밑 外套 안에서

나는 四十年前 凄凉한 아이가 되어

 

내 열살보담

어른인

열여섯 살 난 딸 옆에 섰다

열길 솟대가 기집아이 발바닥 우에 돈다

솟대 꼭두에 사내 어린 아이가 가꾸로 섰다

가꾸로 선 아이 발 우에 접시가 돈다

솟대가 주춤 한다

접시가 뛴다 아슬 아슬

 

클라리오넽이 울고

북이 울고

 

가죽 쟘바 입은 團長이

이욧 ! 이욧 ! 激勵한다

 

防寒帽 밑 外套 안에서

危殆 千萬 나의 마흔아홉 해가

접시 따러 돈다 나는 拍手한다.

 

 


 

 

정지용 시인 / 장수산 2

 

 

풀도 떨지 않는 돌산이오 돌도 한덩이로 열두골을 고비고비 돌았세라 찬 하늘이 골마다 따로씨우었고 얼음이 굳이 얼어 드딤돌이 믿음직 하이 꿩이 기고 곰이 밟은 자옥에 나의 발도 놓이노니 물소리 귀또리처럼 직직하놋다 피락 마락하는 해ㅅ살에 눈우에 눈이 가리어 앉다 흰시울 알에 흰시울이 눌리워 숨쉬는다 온산중 나려앉은 휙진 시울들이 다치지 안히! 나도 내더져 앉다 일즉이 진달래 꽃그림자에 붉었던 절벽 보이한 자리 우에!

 

 


 

정지용[鄭芝溶, 1902.5.15 ~ 1950.9.25] 시인

1902년 충북 옥천 에서 출생. 휘문고보 재학 시절《서광》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는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음.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 해방이 되서는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기록되어 있음.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문학독본』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