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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소월 시인 / 가는 봄 삼월(三月)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9.

김소월 시인 / 가는 봄 삼월(三月)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설게 이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

 

1922. 8

 

 


 

 

김소월 시인 / 가시나무

 

 

산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뻗어 올랐소.

 

산에는 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바로 말로 집도 있는 내 몸이라오.

 

길에 가선 혼잣몸이 홑옷자락은

하룻밤에 두세 번은 젖기도 했소.

 

들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들 끝으로 뻗어나갔소.

 

여성, 1939. 9

 

 


 

 

김소월 시인 / 가을 아침에

 

 

아득한 퍼스레한 하늘 아래서

회색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섶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 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 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싸여 오는 모든 기억은

피 흘린 상처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 속이 가비얍던 날

그리운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미움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강촌(江村)

 

 

날 저물고 돋는 달에

흰 물은 솰솰……

금모래 반짝……

청노새 몰고 가는 낭군!

여기는 강촌

강촌에 내 몸은 홀로 사네.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 봄 오늘이 다 진(盡)토록

백년처권(百年妻眷)을 울고 가네.

길세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강촌에 홀로 된 몸.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시인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식이다. 오산 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 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상대를 중퇴했다. 당시 오산 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이 되었다.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