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가는 봄 삼월(三月)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설게 이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
1922. 8
김소월 시인 / 가시나무
산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뻗어 올랐소.
산에는 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바로 말로 집도 있는 내 몸이라오.
길에 가선 혼잣몸이 홑옷자락은 하룻밤에 두세 번은 젖기도 했소.
들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들 끝으로 뻗어나갔소.
여성, 1939. 9
김소월 시인 / 가을 아침에
아득한 퍼스레한 하늘 아래서 회색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섶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 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 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싸여 오는 모든 기억은 피 흘린 상처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 속이 가비얍던 날 그리운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미움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강촌(江村)
날 저물고 돋는 달에 흰 물은 솰솰…… 금모래 반짝…… 청노새 몰고 가는 낭군! 여기는 강촌 강촌에 내 몸은 홀로 사네.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 봄 오늘이 다 진(盡)토록 백년처권(百年妻眷)을 울고 가네. 길세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강촌에 홀로 된 몸.
진달래꽃, 매문사, 1924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시인 / 허준 (許俊) 외 4편 (0) | 2019.09.30 |
---|---|
정지용 시인 / 슬픈 우상(偶像) 외 4편 (0) | 2019.09.30 |
백석 시인 / 통영(統營) 외 5편 (0) | 2019.09.29 |
정지용 시인 / 다시 海峽 외 4편 (0) | 2019.09.29 |
김기림 시인 / 해도(海圖)에 대하여 외 3편 (0) | 2019.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