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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소월 시인 / 천리 만리(千里萬里)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3.

김소월 시인 / 천리 만리(千里萬里)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여 볼까.

한 줄기 쏜살같이 뻗은 이 길로

줄곧 치달아 올라가면

불붙는 산의, 불붙는 산의

연기는 한두 줄기 피어 올라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

 

 

평양에 대동강은

우리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 가다 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과 이도령도 살았다지요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는 담양,

꿈에는 가끔 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 찾아 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 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팔베개 노래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가장(家長)님만 님이랴

정(情)들면 님이지

한평생(平生) 고락(苦樂)을

다짐 둔 팔베개

 

첫닭아 꼬꾸요

목놓지 말아라

내 품에 안긴 님

단꿈이 깰리라.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來日)은 상사(相思)의

거문고 베개라.

 

조선(朝鮮)의 강산(江山)아

네 그리 좁더냐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집 뒷산 솔버섯

다투던 동무야

어느 뉘 가문(家門)에

시집을 갔느냐.

 

공중(空中)에 뜬 새도

의지가 있건만

이 몸은 팔베개

뜬 풀로 돌지요.

 

면, 1927. 7

 

 


 

 

김소월 시인 / 풀따기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 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이 흘러서

내어 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시인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식이다. 오산 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 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상대를 중퇴했다. 당시 오산 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이 되었다.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