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천리 만리(千里萬里)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여 볼까. 한 줄기 쏜살같이 뻗은 이 길로 줄곧 치달아 올라가면 불붙는 산의, 불붙는 산의 연기는 한두 줄기 피어 올라라.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
평양에 대동강은 우리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 가다 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과 이도령도 살았다지요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는 담양, 꿈에는 가끔 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 찾아 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 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팔베개 노래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가장(家長)님만 님이랴 정(情)들면 님이지 한평생(平生) 고락(苦樂)을 다짐 둔 팔베개
첫닭아 꼬꾸요 목놓지 말아라 내 품에 안긴 님 단꿈이 깰리라.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來日)은 상사(相思)의 거문고 베개라.
조선(朝鮮)의 강산(江山)아 네 그리 좁더냐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집 뒷산 솔버섯 다투던 동무야 어느 뉘 가문(家門)에 시집을 갔느냐.
공중(空中)에 뜬 새도 의지가 있건만 이 몸은 팔베개 뜬 풀로 돌지요.
면, 1927. 7
김소월 시인 / 풀따기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 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이 흘러서 내어 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진달래꽃, 매문사,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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