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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별낚기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2.

김억 시인 / 별낚기

 

 

애인(愛人)이여, 강(江)으로 가자, 지금(只今)은 밤, 낚아질 때다.

애인(愛人)이여, 거리로 가자, 지금(只今)은 밤, 낚아질 때다.

어두운 강(江) 위에는 빛나는 별이 반듯인다.

어두운 거리에는 빛나는 등(燈)불이 반듯인다.

 

애인(愛人)이여, 강(江)으로 가자, 지금(只今)은 밤, 낚아질 때다.

애인(愛人)이여, 거리로 가자, 지금(只今)은 밤, 낚아질 때다.

애인(愛人)이여, 강(江) 위에서 고요히 별을 낚으자.

애인(愛人)이여, 거리에서 고요히 불을 낚으자.

 

애인(愛人)이여, 지금(只今)은 밤, 강(江)으로 가자, 낚아질 때다.

애인(愛人)이여, 지금(只今)은 밤, 거리로 가자, 낚아질 때다.

낚을 것 같으면서도 암만해도 못낚을 별.

잡을 것 같으면서도 암만해도 못잡을 불.

 

애인(愛人)이여, 지금(只今)은 밤, 강(江)으로 가자, 낚아질 때다.

애인(愛人)이여, 지금(只今)은 밤, 거리로 가자, 낚아질 때다.

낮이 되면 별은 숨고 만다.

낮이 되면 불은 꺼지고 만다.

 

애인(愛人)이여, 너는 밤의 강(江) 위에 빛나는 별

애인(愛人)이여, 너는 밤의 거리에 빛나는 불.

너의 맘은 낚을 것 같으면서도 못 낚을 별.

너의 맘은 잡을 것 같으면서도 못 잡을 별.

 

애인(愛人)이여, 지금(只今)은 밤, 강(江)으로 가자, 낚아질 때다.

애인(愛人)이여, 지금(只今)은 밤, 거리로 가자, 낚아질 때다.

너의 맘은 낮이 되어도 숨을 줄 모르는 별.

너의 맘은 낮이 되어도 꺼질 줄 모르는 불.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봄바람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맞춥니다

 

하늘하늘

어디론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바람은

 

그대 잃은

이내 몸의 넋두리외다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 시인 / 봄비

 

 

봄날 저녁에 내리는 비는

보슬보슬 고요도 합니다.

 

마을 앞에 버들가지에는

어린 움이 눈을 내입니다.

 

연(蓮)못 가의 개나리 가지엔

꽃봉오리가 떨어집니다.

 

봄날 저녁에 내리는 비는

보슬보슬 고요도 합니다.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