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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무심(無心)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1.

김억 시인 / 무심(無心)

 

 

평양(平壤)에도 대동강(大同江) 나간 물이라

생각을 애에 말까

해도 그리워

다시금 요 심사(心思)가 안타까워서

이 가슴 혼자로서 쾅쾅 칩니다.

 

얄밉다 말을 할까

하니 얄밉고,

그립다 생각하니 다시 그리워

생시(生時)랴 꿈에서랴 잊을 길 없어

억울한 요 심사(心思)에 내가 웁니다.

 

공중(空中)을 나는 새도 깃을 뒀길래

오갈 제 산(山)을 싸고

돌지 않던가

못잊어 원수라고 속이 상킬래

이 가슴 혼자로서 부숴댑니다.

 

안서시초, 박문서관, 1941

 

 


 

 

김억 시인 / 바다를 건너

 

 

바다를 건너, 푸른바다를 건너

저 멀리 머나먼 바다 저편(便)으로

그윽하게 보이는

흰돛을 달고 가는배……

 

바다를 건너, 푸른바다를 건너

머나먼 저 바다의 수평선(水平線)우으로

끊임없이 홀로 가는

언제나 하소 많은 나의 꿈……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 시인 / 바다 저 편(便)

 

 

바다를 건너, 푸른 바다를 건너

저 멀리 머나먼 바다의 저 편(便)에

그윽하게도 보이는

흰 돛을 달고 가는 배, ……

 

바다를 건너, 푸른 바다를 건너

머나먼 저 바다의 수평선(水平線) 위로

끊지도 아니하고 홀로 가는

언제나 하소연한 나의 꿈, ……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배

 

 

끝도 없는 한바다 위를

믿음성도 적은 사랑의 배는

흔들리우며, 나아가나니,

 

애닯게도 다만 혼자서,

그러나마 미소(微笑)를 띠우고

거칠게 춤추는

푸르고도 깊은 한바다의 먼 길을

사랑의 배는 나아가나니,

아아 머나먼 그 끝은 어데야.

 

희미한 달에 비치어 빛나며, 어두운

끝모를 한바다 위를 배는 나아가나니.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버들가지

 

 

무심(無心)타 봄바람에

꽃은 폈다가,

헛되이 그 바람에

지고 맙니다.

 

서럽지 않을까요,

젊으신 서관(西關) 아씨.

 

오늘도 능라도(綾羅島)라,

버들개지는

물위를 혼자 돌다

흘러갑니다.

 

가엽지 않을까요,

젊으신 서관(西關) 아씨.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