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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눈 올 때마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0.

김억 시인 / 눈 올 때마다

 

 

하얀 눈 볼 때마다 다시금 생각나네

어린적 겨울 밤에 옛날 듣던 이야기.

송이 송이 흰 눈은 산(山)과 들에 퍼 불제

다스한 자리속에 찬 세상(世相)도 모르고―.

 

산(山)에는 신령(神靈)있고 물에는 용왕(龍王)님이

다같이 맡은 세상(世上) 고로이 다스리매

귀(貴)여워라, 산(山)새는 노래로 공중(空中) 날고

고기는 넓은 바다 맘대로 헴치느니.

 

같은 해 고은 달을 이 인생(人生) 즐길 것이

하늘에 홀로 계신 전능(全能)하신 하느님

모두다 살피시며 죄(罪)와 벌(罰) 나리시매

세상(世上)은 평화(平和)스레 이렇듯 일없느니.

 

집을 떠나 몇해나 이 세상(世上) 헤맸던가,

거울 보니 아니라 얼굴도 주름 졌네

까닭스런 세고(世苦)에 부대낀 탓이런가

나는 지금(只今) 비로소 이 인생(人生)을 묻노라.

 

산신령(山神靈)과 용왕(龍王)님 어디로 도망가니

전능(全能)한 하느님도 본색(本色)이 드러났네,

빈 하늘 내 천지(天地)라 비행기(飛行機) 높이 날 제

이 지상(地上) 볼지어다 하루나 평안(平安)한가.

 

시퍼런 하늘 오늘도 눈 기색(氣色)은 도는데

늙으신 어머님은 손자(孫子)를 데리시고

북방(北邦)의 같은 겨울 눈 쌓인 칩은 밤에

아직도 그 이야기 되풀이 하실런고.

 

안서시초, 박문서관, 1941

 

 


 

 

김억 시인 / 달과 함께

 

 

조는 듯한 등(燈)불에 덥히운

권태(倦怠)의 도시(都市)의 밤거리에

고요하게도 눈은 내리며 쌓여라.

 

인적(人跡)은 끊기고

눈이 멎을 때,

 

보라, 이러한 때에, 깊고도 넓은

끝도 없는 밤바다에

하얗게도 외로운 빛을 놓으며,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돌던지기

 

 

1

 

그대의 맘은 알 길 없고

고요히 돌아서서

잔돌 집어 물에 던지니

물살은 희룽희룽

둥그렇게 넓어만 지고

 

2

 

고요한 나의 맘바다에

어쩌자 그대 돌 던졌는가

물결은 미칠 듯 감돌며

끝없이 파문(波紋)을 헤치거니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 시인 / 때

 

 

때의 흐름으로 하여금

흐르는 그대를 흐르게 하여라,

격동(激動)도 식히지 말으며,

또한 항거(抗拒)도 말고

그저 느리게, 제 맘에 맡겨

사람의 일되는

설움의 골짜기로 스며 흘러

기쁨의 산(山)기슭을 여돌아,

넓다란 허무(虛無)의 바다속으로

소리도 없이 고요히 흐르게 하여라.

 

그리하고 언제나

제 맘대로 흘러가는 `때' 그 자신(自身)으로 하여금

너의 앞을 지나게 하여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먼 후일(後日)

 

 

사나이의 생각은 믿기 어렵고

아낙네의 사랑은 변키 쉽다고

우리들은 모두 다 한숨지우나

먼 후일(後日)에는 그것조차 잊으리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