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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오장환 시인 /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1.

오장환 시인 /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부제: 씩씩한 사나이 박진동(朴晋東)의 영(靈) 앞에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받는

이처럼 아름다운 세월 속에서

파출소 지날 때마다

선뜩한 가슴

나는 오며 가며 그냥 지냈다.

 

너는 보았느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는 이들이

다 살기 띠운 얼굴에

장총을 들고 선 것을……

 

그들은 장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총 속엔 탄환이 들었다.

 

파출소 앞에는

스물네 시간

그저 쉬지 않고

파출소만 지키는

군정청의 경찰관!

 

어디다 쏘느냐.

오 어디다 쏘느냐!

이것만이 애타는 우리의 가슴일 때

총소리는 대답하였다.

―여기는 삼청동이다.

죄 없는 학병의 가슴 속이다.

 

그리하여 죽어 가는 학병들도 대답하였다.

―우리 학병 우리 동무 만세!

조선인민공화국 만세!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받는

이처럼 화려한 세월 속에서

아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의 원수를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동무 속에 찾아야 하느냐.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오장환 시인 / 너는 보았느냐

 

 

너는 보았느냐

마차발에 채어 죽은 마차꾼을,

그리고

장안 한복판에

마육(馬肉)을 싣고 가는 마차말같이

인육(人肉)을 싣고 가는 폭력단을―

 

한 나라의 집결된 의사,

인민의 입,

신문이 있다.

그리고

아 끝까지 배지 못한 인육의 마부는

성낸 말들을 이곳으로 몰아 넣는다.

 

너는 보았느냐,

타성의 뒷발질밖에

아무런 재주도 없는

이 마차말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늙은 마부를……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오장환 시인 / 다시금 여가(餘暇)를……

 

 

아, 내 사랑하는 꽃잎알이 지난다.

불 타오르는 햇덩이어!

너의 굴리는 수레바퀴 더욱 힘차고

나는 내 몸에 풍기는 향기조차 잊어 왔고나.

 

어느 것에 앗기웠는가,

무엇에 골독하였나,

예사 젊음에서 사라지는 꽃향기.

 

장마 전 시내 정다이 흐르고

새들은 즐거이 노래 불렀으련만

다가오는 칠월(七月)이어

그대는 나에게 어떠한 열매를 맺어 주려나.

 

다시금 여가(餘暇)를 나에게……

다시금 여가(餘暇)를 나에게……

온통 눈물에 젖었던 얼굴이 스스로 붉어 보도록

 

봄날의 다사로히 퍼지는 햇살들이어!

또 한 번 나의 볼을 어루만지라

더 한 번 내 목에 감기라.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오장환 시인[吳章煥, 1918.5.5 ~ 미상]

본관은 해주(海州). 충청북도 보은에서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중퇴.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朝鮮文學(조선문학) ≫에 〈목욕간〉을 발표하며 등단. 1936년 서정주(徐廷柱)·김동리(金東里)·여상현(呂尙玄)·함형수(咸亨洙) 등과 〈詩人部落(시인부락)〉 동인으로 본격적인 詩作 활동 시작. 시집으로 『성벽 城壁』(1937)·『헌사 獻辭』(1939)·『병(病)든 서울』(1946)·『나 사는 곳』(1947) 등과 번역시집 『에세닌 시집(詩集)』(動向社, 1946)이 있음. 월북 이후 시집 『붉은 깃발』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