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 시인 / 다시 미당리(美堂里)
돌아온 탕아라 할까 여기에 비하긴 늙으신 홀어머니 너무나 가난하시어
돌아온 자식의 상머리에는 지나치게 큰 냄비에 닭이 한 마리
아직도 어머니 가슴에 또 내 가슴에 남은 것은 무엇이냐.
서슴없이 고깃점을 베어 물다가 여기에 다만 헛되이 울렁이는 내 가슴 여기 그냥 뉘우침에 앞을 서는 내 눈물
조용한 슬픔은 알련만 아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 바치었음을……
크나큰 사랑이여 어머니 같으신 바치옴이여!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 괴로움에 못 이기는 내 말을 막고 이냥 넓이 없는 눈물로 싸 주시어라.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오장환 시인 / 독초(毒草)
썩어 문드러진 나무 뿌리에서는 버섯들이 생겨난다. 썩은 나무 뿌리의 냄새는 훗훗한 땅 속에 묻히어 붉은 흙을 거멓게 살지워 놓는다. 버섯은 밤내어 이상한 빛깔을 내었다. 어두운 밤을 독한 색채는 성좌를 향하여 쏘아 오른다. 혼란한 삿갓을 뒤집어 쓴 가냘픈 버섯은 한자리에 무성히 솟아올라서 사념을 모르는 들쥐의 식욕을 쏘을게 한다. 진한 병균의 독기를 빨아들이어 자줏빛 빳빳하게 싸늘해지는 소(小)동물들의 인광! 밤내어 밤내어 안개가 끼고 찬이슬 내려올 때면, 독한 풀에서는 요기의 광채가 피직, 피직 다 타 버리려는 기름불처럼 튀어나오고. 어둠 속에 시신만이 겅충 서 있는 썩은 나무는 이상한 내음새를 몹시는 풍기며, 딱따구리는, 딱따구리는, 불길한 가마귀처럼 밤눈을 밝혀가지고 병든 나무의 뇌수를 쪼으고 있다. 쪼으고 있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오장환 시인 / 매음부(賣淫婦)
푸른 입술. 어리운 한숨. 음습한 방안엔 술잔만 훤―하였다. 질척척한 풀섶과 같은 방안이다. 현화식물(顯花植物)과 같은 계집은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제 마음도 속여 온다. 항구, 항구, 들리며 술과 계집을 찾아다니는 시꺼먼 얼굴. 윤락된 보헤미안의 절망적인 심화(心火). ―퇴폐한 향연 속. 모두 다 오줌싸개 모양 비척거리며 얕게 떨었다. 괴로운 분노를 숨기어 가며…… 젖가슴이 이미 싸늘한 매음녀는 파충류처럼 포복한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오장환 시인 / 무인도(無人島)2
나의 지대함은 운성(隕星)과 함께 타 버리었다. 아직도 나의 목숨은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인가 그 언제인가 허공을 스치는 별납과 같이 나의 영광은 사라졌노라
내 노래를 들으며 오지 않으려느냐 독한 향취를 맡으러 오지 않으려느냐 너는 귀기울이려 아니하여도 딱다구리 썩은 고목을 쪼으는 밤에 나는 한 걸음 네 앞에 가마
표정 없이 타오르는 인광(燐光)이여! 발길에 채는 것은 무거운 묘비와 담담한 상심(傷心)
천변(川邊) 가까이 가마귀떼는 왜 저리 우나 오늘밤 아―오늘밤에는 어디쯤 먼―곳에서 뜬 송장이 떠나 오려나
헌사, 남만서방,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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