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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고적(孤寂)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8.

김억 시인 / 고적(孤寂)

 

 

바다에는 얼음이 덮히고

대지(大地)는 눈속에 잠들어,

가이없는 나의 이 `고적(孤寂)'은

의지(依支)할 곳도 없어지고 말아라.

 

보라, 서(西)녘 하늘에는

눈썹같은 새빨간 반(半)달이

스러져들며, 새까만 밤이

헤매며 내리지 않는가.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곽산(郭山) 고을

 

 

내려쌔는 흰 눈에

밤은 고요코,

정거장(停車場) 곁 옛고을

낡은 거리엔

 

등(燈)불은 눈을 감고

잠들었나니,

나도 그만 누워서

잠이나 자랴.

 

가이없는 그날의

나의 사랑은

잠잠한 옛거리에,

 

소리없이 내려선

녹아버릴 눈

그것이나 다르랴.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 시인 / 꿈의 노래

 

 

밝은 햇볕은 말라가는 금(金)잔디 위의

바람에 불리우는 가마귀의 나래에 빛나며,

비인 산(山)에서 부르는 머슴군(君)의 머슴노래는

멎음없이 내리는 낙엽(落葉)의 바람소리에 섞이여,

추수(秋收)를 기다리는 넓은 들에도 빗겨 울어라.

 

지금(只今)은 가을, 가을에도 때는 정오(正午),

아아 그대여, 듣기조차 고운 낮은 목소리로,

조심(操心)스럽게 그대의 `꿈의 노래'를 부르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나의 이상(理想)

 

 

그대는 먼 곳에서 반듯거리는

내 길을 밝혀주는 외로운 벗,

한 줄기의 적은 빛을 그저 따르며

미욱스럽게도 나는 걸어가노라.

 

그대가 있기에 쉬임도 없고

그대가 있기에 바램도 있나니,

아아 나는 그대에게 매달리어

티끌 가득한 내 세상(世上)에서 허덕이노라.

 

나는 아노라, 그대의 곳에는

목숨의 흐름이 무늬 고운 물결을 짓는

아름다운 봄날의 꽃밭 속에서

화평(和平)의 꿈이 웃음으로 맺어짐을.

 

나의 발은 피곤(疲困)에 거듭된 피곤(疲困),

나의 가슴에는 가득한 새까만 어두움!

아아 그대 곳 없다면, 나의 몸이야

어떻게 걸으며 어떻게 살으랴.

 

아아 애닯아라, 그대의 곳은

한(恨) 끝도 없는 머나먼 지평선(地平線) 끝!

그러나, 나는 그저 걸으려노라,

눈먼 새 외동무를 따라가듯이.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낙타(駱駝)

 

 

새빨간 새빨간 저녁 별을

함뿍히 무거운 짐에다 받으며

사막(沙漠)을 허덕허덕 걷는 나의 낙타(駱駝)여

가도가도 사막(沙漠)은 끝없는 것을

나의 낙타(駱駝)

인생(人生)의 이 사막(沙漠)을 나는 우노라

새빨간 새빨간 저녁 별을 받으며.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

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