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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신작로(新作路)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4.

김억 시인 / 신작로(新作路)

 

 

행객(行客)은 오고가고 가고옵니다.

자욱은 자욱밟아 티끌이외다,

바람부니 그나마 티끌 납니다.

님이어, 이 한 생(生)은 신작로(新作路)외까.

 

신작로(新作路)는 이내 맘 분주도 하이

밤낮으로 행객(行客)은 끊일 때 없네,

먼지 속에 발자욱 어지러우니

꿈타고 지내신 님 어이 찾을고.

 

행(幸)여나 님 오실까 닦은 신작로(新作路)

낯설은 행객(行客)들만 뭐라 오갈고

쓸데없는 자욱에 먼지만 일고

기두는 님 행차(行次)는 이 날도 없네.

 

신작로(新作路)엔 자동차(自動車) 달아납니다,

길도 없는 바다를 배는 갑니다,

빈 하늘 푸른 길엔 새가 납니다,

임이여 어느 길을 저는 가리까.

 

저기서 풀밭 속에 길 있습니다

외마디 자욱길로 어지럽쇠다,

아무도 안다니어 고요하외다,

임이여, 가십시다, 저 길이외다.

 

안서시초, 박문서관, 1941

 

 


 

 

김억 시인 / 실제(失題)

 

 

내 귀가 님의 노래 가락에 잡혔을 때에

그대가 고운 노래를 내 귀에 보내었습니다,

만은 조금도 그 노래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 눈이 님의 맘의 꽃밭에서 노닐 때에

그대가 그대의 맘의 꽃밭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만은 조금도 그 맘의 꽃밭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 입이 님의 보드라운 입술과 마주칠 때에

그대가 그대의 보드라운 입술로 불렀습니다,

만은 조금도 그 입술은 닫히어지지 않았습니다.

 

내 코가 님의 스며나는 향(香)내에 취(醉)하였을 때에

그대가 그대의 스며나는 향(香)내를 보내었습니다,

만은 조금도 그 향(香)내는 맡아지지 않았습니다.

 

내 꿈이 님의 무릎위에서 고요하였을 때에

그대가 그대의 무릎위로 내 꿈을 불렀습니다.

만은 조금도 그 꿈은 깨지를 못하였습니다.

 

지금(只今) 내 맘이 깨어 두번 그대를 찾을 때에는

찾는 그대는 간 곳이 없고 임만 남았습니다,

아아 이렇게 살림은 밤낮으로 이어졌습니다.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십일월(十一月)의 저녁

 

 

바람에 불리우는

옷 벗은 나무수풀로

작은 새가 날아갈 때,

하늘에는 무거운 구름이 떠돌 며

저녁해는 고요히도 넘어라.

 

고요히 서서, 귀 기울이며 보아라,

어둑한 설은 회한(悔恨)은 어두워지는 밤과 함께,

안식(安息)을 기다리는 맘 위에 내려오며,

빛깔도 없이, 핼금한 달은 또다시 울지 않는가.

나의 영(靈)이여, 너는 오늘도 어제와 같이,

혼자 머리를 숙이고 쪼그리고 있어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