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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탈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7.

김억 시인 / 탈춤

 

 

여러분, 살음의 즐거움을 맛보려거든,

`도덕(道德)'의 예복(禮服)과 `법률(法律)'의 갓을 묘(妙)하게 쓰고

다 이곳으로 들어옵시요, 이곳은

인생(人生)의 `이기(利己)'의 탈춤 회장(會場)입니다.

춤을 잘 추어야 합니다, 서툴러 넘어지면

운명(運命)이라는 놈의 함정(陷穽)에 들어갑니다,

하면 `행복(幸福)의 명부(名簿)'에서는 이름을 어이며,

다시는 입장권(入場券)인 인생관(人生觀)을 얻지 못합니다.

인생(人生)은 짧고 춤추는 시간(時間)은 깁니다,

한 분(分)만 잃으면, 한 분(分)만큼한 행복(幸福)의 춤이

없어지게 됩니다, 선(善)은 빨리 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빨리 춥시다, 좋다 좋다, 얼씨구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풀밭 위

 

 

맡으면 향(香)내나는 풀밭 위에

황금색(黃金色)의 저녁볕이 춤추며

들벌레소리가 어지러울 때,

또다시 나는 혼자 누워서

구름끝에 생각을 보내고 있노라.

 

떠서는 잠겨드는 심사(心思)와도 같이

저 멀리 구름 속에 이동(移動)이 잦을 때,

어디선지 저녁 종(鐘)이 빗겨 울리어,

저 멀리 먼 곳으로 야속케도 심사(心思)가 끌려라.

 

달은 혼자서 방향(方向) 없이 아득이면서

하늘길을 걷고 있어라.

 

고요한 밤거리에는

잃어진 꿈과도 같게

곱게도 등(燈)불이 졸고 있어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피리

 

 

빈 들을 휩쓸어 돌으며,

때도 아닌 낙엽(落葉)을 최촉(催促)하는

부는 바람에 좇기어,

내 청춘(靑春)은 내 희망(希望)을 버리고 갔어라.

 

저멀리 검은 지평선(地平線) 위에

소리도 없이 달이 오를 때,

이러한 때에 나는 고요히 혼자서

옛 곡조(曲調)의 피리를 불고 있노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해마다 생각나는

 

 

해마다 연분홍 살구꽃이 피어

가없는 봄맘이 끌릴 때가 되면

다시금 안 잊히는 실없던 작란(作亂),

 

때는 사월(四月)의 아름다운 어느 날,

동무들과 꽃밭에 나는 갔노라.

어이하랴, 고운 꽃 냄새 맑길래,

 

한송이 꺾어 손에다 들었노라,

그러나 얼마 안해 꽃은 시들고

냄새만 한갓되이 남돌던 것을.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 시인 / 황해(黃海)의 첫봄

 

 

1

 

양지(陽地)귀 잔디밭에

속잎 푸르고

바다엔 얼음 풀려

오가는 흰 돛

어야데야 배소리

하늘에 찼소

 

하늘 중천(中天) 내 천자(川字)

행렬(行列)을 지어

넓은 들을 날도는

기럭 그기럭

기러기는 왔노라

잘도 울것다.

 

2

 

십리포구(十里浦口) 질펀타

두둥실 뜬 배

고기잡이 노래에

포구(浦口) 아씨네

제 속은 딴 데 두고

웃지만 마소

 

무심(無心)타 갈매기도

한(限)껏 목놓아

여저기 노래노래

쌍쌍(雙雙)이 돌며

새라 새 봄 제 흥(興)에

잘도 놀것다.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