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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황순원 시인 / 꺼진 등대(燈臺)에 불을 켜자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9.

황순원 시인 / 꺼진 등대(燈臺)에 불을 켜자

 

 

별 없는 하늘에 번개가 부딪히고,

고운 달빛이 잔물결 우로 미끄러지는 사이에

쉬지 않고 바뀌는 태양(太陽)의 빛을 맛보며 회색(灰色) 바위에 높이 서 있는 등대(燈臺),

지금은 유탄(流彈) 맞은 성벽(城壁)같이 양쎈 힘을 잃어 버렸나니

무너지는 대벽(臺壁)이어, 깨여진 유리창이어,

산산히 부서진 등(燈)알이어, 녹슬은 쇠지붕이어.

 

바닷가에 솟은 검바위를 삼킬 듯한 날카로운 바람과 물결!

저어가는 배사공을 뒤 엎으려는 기운찬 대양(大洋)의 호흡(呼吸)!

이날에 이곳을 지나려는 나그네들

무엇을 바라보고 바로 치를 잡을 것인가.

 

더구나 넘치는 사랑으로 불켜든 늙은 등대수(燈臺守)는

선지피 묻은 입술을 꼭 물고 원한의 눈을 뜬 채로 넘어졌으며,

하늘에 뭉킨 구름떼, 땅에 줄달음치는 바다물까지가

간악한 적(敵)의 승리(勝利)를 알리는 때, 축하하는 때

해기운 저녁에 이름 모를 새의 우지짐이어,

아하, 떠러진 역사(歷史)의 한 절을 조상하고 있고나.

 

뜻있는 친구여, 억함에 가슴 뜯는 무리여

좀먹는 현실(現實)을 보고 슬퍼만 말라.

우리는, 참 사내는, 다시 등대(燈臺)의 불을 겨누아

뒷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의 기꺼워함을

아하, 가슴 깊이 안아야 하지 않는가, 안아야 하지 않는가.

 

방가(放歌), 동경학생예술좌 문예부, 1934

 

 


 

 

황순원 시인 / 나의 꿈

 

 

꿈, 어제밤 나의 꿈, 이상한 꿈을 꾸었다.

세계를 짓밟아 문지른 후 생명의 꽃을 가득히 심으고,

그 속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러 보았다.

 

그러다, 언제던지 잊지 못할 이 꿈은

깨어 흩어진 이내 머리에도 굳게 못 박혔다.

다른 모든 것은 세파(世波)에  스치어도 나의 동경(憧憬)의 꿈만은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하느니

 

방가(放歌), 동경학생예술좌 문예부, 1934

 

 


 

 

황순원 시인 / 나의 노래

 

 

나는 귀를 막았다.

어째서? ―

비명, 탄식, 애원, 호소, 저주!

그대로는 듣지 못할 부르짖음 행여나 아니 들릴까 하여.

그러나, 쟁쟁히 귓고막을 깨치고, 새여 들어오는 것을 어떻거나?

괴로우나마 내가 들어야 할 소린것 갓다.

 

나는 눈을 감았다.

왜 ―

거짓, 간사, 속임, 증오, 모순 !

눈을 바로 뜨고 보지 못 할 현상을 멀리로 사라지게 하려고.

그러나, 더한층 똑똑히 눈앞에 나타나 머리 속을 산란케 하는 것을 어떡하나?

쓰라리나마 내가 보아야 할 증상인것 같다.

 

마침내 나는 길을 떠났다.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도 내일도 걸을 나그네의 길이다.

나의 진 짐이 무거우니 좀 쉬어 가라고?

아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고 기다리는 그 곳까지 가서

얽매인 신들매를 풀고, 그 짐을 내리려 한다.

 

방가(放歌), 동경학생예술좌 문예부, 1934

 

 


 

황순원 시인.소설가(黃順元, 1915 ~ 2000)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였던 찬영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만강(晩岡)이고 본관은 제안(齊安)이다. 1931년 “동광(東光)” 지에 시 ‘나의 꿈’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29년평양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정주 오산중학교를 거쳐 1934년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해에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진학했으며, 1936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향리인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 등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지내다가 1946년 월남하였다. 이후 서울중고등학교 교사, 경희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80년 경희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으며, 2000년 9월 14일 향년 86세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