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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영랑 시인 / 눈물 속 빛나는 보람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30.

김영랑 시인 / 눈물 속 빛나는 보람

 

 

눈물 속 빛나는 보람과 웃음 속 어둔 슬픔은

오직 가을 하늘에 떠도는 구름

다만 후젓하고 줄 데 없는 마음만 예나 이제나

외론 밤 바람슷긴 찬 별을 보았습니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님 두시고

 

 

님 두시고 가는 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한숨 쉬면 꺼질 듯 조매로운 꿈길이여

이 밤은 캄캄한 어느 뉘 시골인가

이슬같이 고인 눈물을 손끝으로 깨치나니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이길래

내 숨결 가부엽게 실어보냈지

하늘가를 스치고 휘도는 바람

어이면 한숨만 몰아다 주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들꽃

 

 

향내 없다고 버리실라면

내 목숨 꺾지나 말으시오

외로운 들꽃은 들가에 시들어

철없는 그이의 발끝에 조을걸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떠 날아가는 마음

 

 

떠 날아가는 마음의 파름한 길을

꿈이런가 눈감고 헤아리려니

가슴에 선뜻 빛깔이 돌아

생각을 끊으며 눈물 고이며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본명은 김윤식(允植). 영랑(永郞)은 아호.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에서 출생.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청산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향리에 머물렀다. 광복 후 오랫 동안의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9.28 수복 당시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김영랑은 1930년 3월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이하윤(異河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四行小曲)> 7수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194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거문고>, < 독을 차고>, <망각>, <묘비명> 등 일련의 시작품에서는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 의식이 나타나 있다. 해방 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 <천리(千里)를 올라온다> 등은 일제 치하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욕으로 충만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영랑시집>과 자선시집 <영랑시선>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