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시인 / 삼태동(三台洞)을 지나며
삼태동(三台洞)은 고향(故鄕) 합포(合浦)에서 서(西)으로 칠십리(七十里)를 나가 있는 곳이다. 1925년 7월 2일 내 그 산촌(山村)을 지나다가 서숙(書塾)을 찾아 강선생(姜先生)이란 이와 인사하고 이 노래를 지어 드리고 가다.
삼태산(三台山) 깊은 골에 먼지 없는 이 마슬은 차움의 세상 밖에 따로 베푼 평화(平和)동산 내 길이 바쁘건마는 쉬다 갈까 하오
고목(古木)선 우물가에 물 긷는 저 아가씨 동이를 이기 전에 한 모금만 마셔 주오 타는 목 그 생명수(生命水)로 축여 볼까 하오
옷 벗은 아이들아 천사(天使)의 후신(後身)들아 풀 한 줌 흙 한 줌을 쥐고 옴은 무삼 일고 옳아 참 상처 난 내 몸에 그 약(藥) 발라 다오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선죽교(善竹橋)
충신(忠臣)의 남긴 뜻이 돌에 스며 붉었으니 하마배(下馬拜) 하온 이들 몇 만(萬)인지 모르리만 돌아가 행(行)하신 이는 몇 분이나 되는고
충신(忠臣)의 타는 넋이 홍엽(紅葉)에 배어들어 용수(龍岫) 송악(松岳)에 두루 심겨 천만수(千萬樹)를 유객(遊客)이 헛보고 지나니 그를 설워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설야음(雪夜吟)
삼경(三更)이 넘어서야 거리를 벗어나서 눈빛에 길을 찾아 산(山) 마슬로 돌아오니 등잔불 그무는 저기 내 집인가 아닌가
눈보라 휘불리어 얼굴을 치는구나 찬 뺨에 흐르는 물 눈녹음만 아니오나 이 한밤 외진 산길에 어느 분이 알리오
지게에 다달아서 언 고리 잡다 말고 타는 애 끌 길 없어 되나서 산모루로 송림(松林)에 눈비 맞으며 돌아올 줄 몰라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어포(漁浦) 달 밝은 밤에
어포(漁浦) 달 밝은 밤에 모래 위를 거니노라 밀물을 피(避)하는 걸음 깨달으니 초제(草堤)로다 무심(無心)코 풀 위에 앉을 제 반디 놀라 날더라
청도암(淸濤岩) 밤 물결에 띄우노라 조각배를 시원한 바람 따라 흘리노라 백마도(白馬島)로 새벽만 넘는 달빛에 갈밭 돌아 오리라
빈 배에 몸을 맡겨 달 더불어 누웠거늘 어즐은 세상 일을 생각하여 무삼하리 밤고기 뛰는 소리에 그만인가 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옛 강(江)물 찾아와
옛 강(江)물 그리워서 봄 따라 나왔더니 물도 그도 다 가시고 봄도 그 봄 아니온데 호을로 아니 간 것은 내 맘인가 하노라
물 건너 하늘가에 떠도는 구름같이 뭉쳤단 바람 따라 헤어지고 마는 것을 지금도 고개 돌리니 곁에 선 듯하여라
그 옛날 이 모래 위에 서로 쓴 두 이름은 흐르는 물에 씻겨 길이 길이 같이 예리 몸이야 나뉘시온들 한(恨)할 줄이 있으랴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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