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시인 / 비로봉(毘盧峰) 기일(其一)
비로봉(毘盧峰) 오르는 길은 `금(金)서들'이라 부르는 푸른 이끼 앉은 돌무더기와 `은(銀)서들'이라 부르는 흰 이끼 앉은 돌무더기로 되었는데 `서들'이란 말은 `뢰(磊)'의 뜻이며 혹 이를 `사다리'라고도 하니 이는 `서들'의 와(訛)일 것이나 밟고 오르는 층계(層階)라는 뜻으로 보면 그 역(亦) 무방(無妨)하다.
금(金)길 은(銀)길 밟고 올라 상청궁(上淸宮)에 높이 서니 일성(日星) 운한(雲漢)과 벗하는 오늘이라 천풍(天風)은 무수(舞袖)를 날리며 몸 가으로 돌더라
백운대(白雲臺) 여기로다 청벽(靑壁)을 만지노라 팔황(八荒) 운물(雲物)이 발 아래 다 깔리니 내 몸이 어디 섰는지 분별(分別) 못해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사랑
꽃은 진다 하고 달도 이즌다네 어즈버 님 날 사랑은 대일 곳이 없세라
졌던 꽃 다시 피고 이즌 달도 되둥그네 사랑 곧 이러할진댄 끊여 섧다 하리오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산(山) 위에 올라
안개 싸인 산(山)을 헤히고 올라선 제 새소리 들리건마는 새는 아니 보이오
안개 걷고 나니 울던 새 인곧 없고 이슬만 잎사귀마다 방울방울 맺혔소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산전(山田)을 지나며
산전(山田)에 저 농부(農夫)야 빈고(貧苦)를 울지 마소 세상에 허다우부(許多愚夫) 마음 팔아 낙(樂)을 사오 넋 없는 허수아비들 웃어준들 어떠리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삼개에서
찾으니 장강(長江)인데 강(江) 건너 은(銀)모랫벌 벌 지나 뫼이온데 뫼 넘어 구름일네 천지(天地)에 봄바람만이 불어 왕래(往來)하더라
돌길이 좁고 험(險)해 홑몸도 어려워늘 무거운 세상 시름 지고 안고 무삼 일고 강문(江門)에 다 부려 두고 몸만 돌아 들까나
푸른 물 검은 돌에 흰옷 빠는 저 아씨들 옷 치는 방치 소리 뱃노래에 절로 맞네 이따금 아미를 고치는지 장단(長短) 흐려지더라
바위벽(壁) 돌아드니 한마당 백사(白沙)로다 거니는 이 발자옥 물이 밀면 쓸리려니 진객(塵客)에 더러힌 자취 남겨 무삼하리오
물새의 노래 듣소 이 분명 거문고를 흰구름 물에 드니 이 정녕 그림일사 소리 빛 한데 모이니 승경(勝景)인가 하노라
봄바람 노는 양을 이 강(江)에 와 보완제고 가벼운 노(櫓)소리를 붙여 함께 듣노매라 사람은 승지(勝地)를 찾아 멀리로만 가더라
청류(淸流)에 낚시 던져 놀이하는 저 분들아 고기야 네 것이냐 취적(取適)이나 하올 것이 어조(魚鳥)도 봄을 아나니 같이 논들 어떠리
언덕에 올라 앉아 봄바람에 눈물 지고 돌아서 새소리에 혼자 웃는 내 모양을 저 물도 흘러가나니 전할 뉘를 몰라라
해는 지려 하고 애는 더욱 끊이랴ㄹ제 한가락 미친 노래 석벽(石壁) 넘어 들려오네 저 분은 무슨 한(恨)으로 목에 피를 올리나니
두세 돛 강풍(江風)을 띄어 포구(浦口)로 바삐 드네 석양(夕陽)에 돌아서니 진환이 고대로다 강두(江頭)에 취객(醉客)이 모여 오락가락 하더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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