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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은상 시인 / 비로봉(毘盧峰) 기일(其一)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31.

이은상 시인 / 비로봉(毘盧峰) 기일(其一)

 

 

비로봉(毘盧峰) 오르는 길은 `금(金)서들'이라 부르는 푸른 이끼 앉은 돌무더기와 `은(銀)서들'이라 부르는 흰 이끼 앉은 돌무더기로 되었는데 `서들'이란 말은 `뢰(磊)'의 뜻이며 혹 이를 `사다리'라고도 하니 이는 `서들'의 와(訛)일 것이나 밟고 오르는 층계(層階)라는 뜻으로 보면 그 역(亦) 무방(無妨)하다.

 

금(金)길 은(銀)길 밟고 올라 상청궁(上淸宮)에 높이 서니

일성(日星) 운한(雲漢)과 벗하는 오늘이라

천풍(天風)은 무수(舞袖)를 날리며 몸 가으로 돌더라

 

백운대(白雲臺) 여기로다 청벽(靑壁)을 만지노라

팔황(八荒) 운물(雲物)이 발 아래 다 깔리니

내 몸이 어디 섰는지 분별(分別) 못해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사랑

 

 

꽃은 진다 하고 달도 이즌다네

어즈버 님 날 사랑은 대일 곳이 없세라

 

졌던 꽃 다시 피고 이즌 달도 되둥그네

사랑 곧 이러할진댄 끊여 섧다 하리오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산(山) 위에 올라

 

 

안개 싸인 산(山)을 헤히고 올라선 제

새소리 들리건마는 새는 아니 보이오

 

안개 걷고 나니 울던 새 인곧 없고

이슬만 잎사귀마다 방울방울 맺혔소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산전(山田)을 지나며

 

 

산전(山田)에 저 농부(農夫)야 빈고(貧苦)를 울지 마소

세상에 허다우부(許多愚夫) 마음 팔아 낙(樂)을 사오

넋 없는 허수아비들 웃어준들 어떠리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삼개에서

 

 

찾으니 장강(長江)인데 강(江) 건너 은(銀)모랫벌

벌 지나 뫼이온데 뫼 넘어 구름일네

천지(天地)에 봄바람만이 불어 왕래(往來)하더라

 

돌길이 좁고 험(險)해 홑몸도 어려워늘

무거운 세상 시름 지고 안고 무삼 일고

강문(江門)에 다 부려 두고 몸만 돌아 들까나

 

푸른 물 검은 돌에 흰옷 빠는 저 아씨들

옷 치는 방치 소리 뱃노래에 절로 맞네

이따금 아미를 고치는지 장단(長短) 흐려지더라

 

바위벽(壁) 돌아드니 한마당 백사(白沙)로다

거니는 이 발자옥 물이 밀면 쓸리려니

진객(塵客)에 더러힌 자취 남겨 무삼하리오

 

물새의 노래 듣소 이 분명 거문고를

흰구름 물에 드니 이 정녕 그림일사

소리 빛 한데 모이니 승경(勝景)인가 하노라

 

봄바람 노는 양을 이 강(江)에 와 보완제고

가벼운 노(櫓)소리를 붙여 함께 듣노매라

사람은 승지(勝地)를 찾아 멀리로만 가더라

 

청류(淸流)에 낚시 던져 놀이하는 저 분들아

고기야 네 것이냐 취적(取適)이나 하올 것이

어조(魚鳥)도 봄을 아나니 같이 논들 어떠리

 

언덕에 올라 앉아 봄바람에 눈물 지고

돌아서 새소리에 혼자 웃는 내 모양을

저 물도 흘러가나니 전할 뉘를 몰라라

 

해는 지려 하고 애는 더욱 끊이랴ㄹ제

한가락 미친 노래 석벽(石壁) 넘어 들려오네

저 분은 무슨 한(恨)으로 목에 피를 올리나니

 

두세 돛 강풍(江風)을 띄어 포구(浦口)로 바삐 드네

석양(夕陽)에 돌아서니 진환이 고대로다

강두(江頭)에 취객(醉客)이 모여 오락가락 하더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李殷相) 시인 / 1903∼1982

시조 시인. 호는 노산(鷺山). 경남 마산에서 출생. 마산 사립 창신 학교 고등과를 나와 1923년에 연희 전문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에 유학,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서 수업하였다. 그 후 월간지 '신생'을 편집했고, 1931년에 이화 여전 교수가 되었다. 광복 후 '호남 신문' 사장과 서울대,영남대 교수등을 지냈고, 1954년에는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 사업 회장, 민족 문화 협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시조 작가 협회장 및 숙명여대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에 노산 시조 문학상을 제정하였고, 1981년에 국정 자문 위원에 위촉되었다.

[봄처녀] [옛동산에 올라] [가고파]등으로 고유한 전통의 시 형식인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였고, 1932년에 간행된 '노산 시조집'은 1920년대의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의 시조 부흥론에 의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저서에는 '이충무공 일대기' '민족의 향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