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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은상 시인 / 태자궁지(太子宮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4.

이은상 시인 / 태자궁지(太子宮址)

 

 

혹자왈(或者曰) `마의초식(麻衣草食)한 이가 무슨 정(情)에 궁(宮)을 세웠겠느냐. 이는 전설(傳說)이요 사실(史實)은 아니라'고 한다. 답왈(答曰) 그는 잘못이다. 궁이 반드시 화려굉대(華麗宏大)를 뜻함이 아닐지니 일간두옥(一間斗屋)도 태자(太子)가 거(居)하시매 사람들이 말하되 궁(宮)이라 하였으리라.

 

마의(麻衣) 초식(草食)하되 님이시니 님인 것이

님이 계오시니 막이라도 궁(宮)인 것이

높으신 그 뜻을 받들어 섬기올까 하노라

 

풀이 절로 나고 나무가 절로 썩고

나고 썩고를 천년(千年)이 넘었으니

유신(遺臣)의 뿌린 눈물이야 얼마인 줄 알리오

 

그 모른 외인(外人)들은 경(景)만 보고 지나가네

뜻 품은 후손(後孫)이라도 해만 지면 가는 것을

대대(代代)로 예 사는 새들만 지켜 앉아 우나니

 

오늘은 비 뿌리고 내일은 바람 불어

계오신 대궐은 터 쫓아 모를노다

석양(夕陽)에 창태(蒼苔)를 헤치니 눈물 앞서 흐르네

 

궁(宮) 터를 홀로 찾아 초석(礎石)을 부드안고

옛날을 울어내어 오늘을 조상(弔喪)할 제

뒷시내 흐르는 여울도 같이 울어 예더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포은구거(圃隱舊居)

 

 

계옵던 옛 집터를 절하고 굽혀 드니

벽상(壁上) 영정(影幀)이 사신 듯 말하실 듯

맞추어 울 밑 황국(黃菊)이 서리 속에 섰더라

 

묻노라 저 읍비(泣碑)야 네 눈물 얼마완대

이토록 흘리고서 상기 아니 마르나니

만고한(萬古恨) 맺힌 눈물이니 그칠 날을 몰라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할미꽃

 

 

겉보고 늙다 마소 속으로 붉은 것을

해마다 봄바람에 타는 안 끄지 못해

수심에 숙이신 고개 알 이 없어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화원(花園)

 

 

화원(花園) 터 어드매오 왕자공손(王子公孫)은 누구시오

팔각전(八角殿) 화초 향기 끊인 적이 오랜 이제

빈가(貧家)에 낙엽(落葉)져 날리니 아무덴 줄 몰라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李殷相) 시인 / 1903∼1982

시조 시인. 호는 노산(鷺山). 경남 마산에서 출생. 마산 사립 창신 학교 고등과를 나와 1923년에 연희 전문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에 유학,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서 수업하였다. 그 후 월간지 '신생'을 편집했고, 1931년에 이화 여전 교수가 되었다. 광복 후 '호남 신문' 사장과 서울대,영남대 교수등을 지냈고, 1954년에는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 사업 회장, 민족 문화 협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시조 작가 협회장 및 숙명여대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에 노산 시조 문학상을 제정하였고, 1981년에 국정 자문 위원에 위촉되었다.

[봄처녀] [옛동산에 올라] [가고파]등으로 고유한 전통의 시 형식인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였고, 1932년에 간행된 '노산 시조집'은 1920년대의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의 시조 부흥론에 의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저서에는 '이충무공 일대기' '민족의 향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