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시인 / 태자궁지(太子宮址)
혹자왈(或者曰) `마의초식(麻衣草食)한 이가 무슨 정(情)에 궁(宮)을 세웠겠느냐. 이는 전설(傳說)이요 사실(史實)은 아니라'고 한다. 답왈(答曰) 그는 잘못이다. 궁이 반드시 화려굉대(華麗宏大)를 뜻함이 아닐지니 일간두옥(一間斗屋)도 태자(太子)가 거(居)하시매 사람들이 말하되 궁(宮)이라 하였으리라.
마의(麻衣) 초식(草食)하되 님이시니 님인 것이 님이 계오시니 막이라도 궁(宮)인 것이 높으신 그 뜻을 받들어 섬기올까 하노라
풀이 절로 나고 나무가 절로 썩고 나고 썩고를 천년(千年)이 넘었으니 유신(遺臣)의 뿌린 눈물이야 얼마인 줄 알리오
그 모른 외인(外人)들은 경(景)만 보고 지나가네 뜻 품은 후손(後孫)이라도 해만 지면 가는 것을 대대(代代)로 예 사는 새들만 지켜 앉아 우나니
오늘은 비 뿌리고 내일은 바람 불어 계오신 대궐은 터 쫓아 모를노다 석양(夕陽)에 창태(蒼苔)를 헤치니 눈물 앞서 흐르네
궁(宮) 터를 홀로 찾아 초석(礎石)을 부드안고 옛날을 울어내어 오늘을 조상(弔喪)할 제 뒷시내 흐르는 여울도 같이 울어 예더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포은구거(圃隱舊居)
계옵던 옛 집터를 절하고 굽혀 드니 벽상(壁上) 영정(影幀)이 사신 듯 말하실 듯 맞추어 울 밑 황국(黃菊)이 서리 속에 섰더라
묻노라 저 읍비(泣碑)야 네 눈물 얼마완대 이토록 흘리고서 상기 아니 마르나니 만고한(萬古恨) 맺힌 눈물이니 그칠 날을 몰라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할미꽃
겉보고 늙다 마소 속으로 붉은 것을 해마다 봄바람에 타는 안 끄지 못해 수심에 숙이신 고개 알 이 없어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화원(花園)
화원(花園) 터 어드매오 왕자공손(王子公孫)은 누구시오 팔각전(八角殿) 화초 향기 끊인 적이 오랜 이제 빈가(貧家)에 낙엽(落葉)져 날리니 아무덴 줄 몰라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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