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 / 고추잠자리
비잉 비잉 돈다 어릴 때 하늘이
물빛 대싸리 위에만 뜨던 고추잠자리떼 하늘이
알몸에 고여 빙빙빙 돈다
부질없는 이 오후(午後)의 열(熱) 늦은 시간(時間)이 내의(內衣)를 적신다.
싸락눈, 삼애사, 1969
박용래 시인 / 곰팡이
진실(眞實)은 진실(眞實)은
지금 잠자는 곰팡이뿐이다 지금 잠자는 곰팡이뿐이다
누룩 속에서 광 속에서
명정(酩酊)만을 위해 오오직
어둠 속에서 ……
거꾸로 매달려
먼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구절초(九節草)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귀울림
호박잎 하눌타리 자락 짓이기고 황소떼 몰린 물구나무 선 동구(洞口)
(아삼한 곡성(哭聲))
아, 추수도 끝난 가을 한철 저물녘 논배미 물꼬에 뜬 우렁 껍질의 귀울림.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그늘이 흐르듯
오월(五月)은, 초록 비 젖어 허전한 SPELL 가슴에, 밀려 일찍 없었던 맘. 물에 그늘이 흐르듯 흐르는 그리움, 아 오월(五月)은 외로운 SPELL, 비로 엮는 가슴. 생각다 생각해 부식(腐蝕)하는 영상(映像).
싸락눈, 삼애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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