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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차주일 시인 / 조바꿈표 그리기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6.

차주일 시인 / 조바꿈표 그리기

 

 

  당신의 잘려 나간 두 팔이 나를 제자리에 세우네요.

  조바꿈표처럼 두 다리로 서게 되는 제자리는

  사람에게 과거를 재해석하게 하나 봐요.

  자신이 삶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하네요.

  지금껏 수많은 나를 재해석해왔지만

  당신의 사라진 두 팔 이후는 찢어진 악보처럼 난감해요.

  하지만, 의수가 건반을 두드릴 때

  익숙한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그것은 타자의 현재가 나의 과거이기 때문이겠죠.

  지금 당신의 연주는 내 미래를 바꾸는 순간이에요.

  타인이 부른 노래는 나의 반주가 되므로

  어느 날 아침 나는 당신의 노래를 되뇌며

  내 두 팔로 나를 안아주고 있을 것만 같아요.

  새로운 걸음을 요구하는 당신의 조바꿈에 따를게요.

  자신과 미래를 단절하려던 나에게

  과거와 미래 사이에 그려 넣는 현재에 대해 말해줄게요.

  그랬군요, 당신은 내 실종된 보폭을 연주하고 있었군요.

  맞아요, 내 걸음은 타자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제, 두 팔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을게요.

  내 몸을 내 두 팔로 감싸 안으면

  조바꿈이 시작된다는 것 알게 되었으니까요.

  첫걸음을 낳는 이 흉통을 따라가 볼게요.

 

계간 『시산맥』 2016년 겨울호 발표

 

 


 

차주일 시인

1961년 전라북도 무주에서 출생. 200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천년의시작, 2010)이 있음. 2011년 윤동주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