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화 시인 / 치자빛 여름
꽃이 피려는지 심장 근처가 가렵다
고여있던 시간이 몸 안에서 전구를 켠 듯 환해지면 그늘진 곳에서 철지나 피어있는 치자꽃의 하루를 빌려 당신에게 간다 잘 익은 구름으로 만든 싱싱한 어제를 두 손에 들고
집요한 질문들로 봄을 장악하고 나서야 꽃들은 물빛으로 흐른다 환한 손금의 한때에 작은 꽃문을 내고 툭치는 손길에 어깨를 내어주고 싶은 계절 제대로 여물지 못한 저녁을 미리 꺼내 종소리에 담가 그 속에 숨어 우리 꽃이나 잔뜩 피워볼까
나무들이 초록 입술을 뱉어낼 때 구름 한 모금 입에 물고 여름이 귓속으로 흘러든다 당신 얼굴에 박혀있는 열 개의 꽃들이 하얗게 젖고 있다 지금은 무르익은 언어로 방금 도착한 마음을 위로할 때
계간 『열린시학』 2016년 여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안나 시인 / 단상(斷想) (0) | 2019.11.27 |
|---|---|
| 이령 시인 / 옹브르* (0) | 2019.11.26 |
| 김도연 시인 / 참나리꽃 속에 핀 여름 (0) | 2019.11.26 |
| 차주일 시인 / 조바꿈표 그리기 (0) | 2019.11.26 |
| 김은경 시인 / 서툰 사람들 (0) | 2019.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