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정용화 시인 / 치자빛 여름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6.

정용화 시인 / 치자빛 여름

 

 

꽃이 피려는지 심장 근처가 가렵다

 

고여있던 시간이 몸 안에서 전구를 켠 듯 환해지면 그늘진 곳에서 철지나 피어있는 치자꽃의 하루를 빌려 당신에게 간다 잘 익은 구름으로 만든 싱싱한 어제를 두 손에 들고

 

집요한 질문들로 봄을 장악하고 나서야 꽃들은 물빛으로 흐른다 환한 손금의 한때에 작은 꽃문을 내고 툭치는 손길에 어깨를 내어주고 싶은 계절 제대로 여물지 못한 저녁을 미리 꺼내 종소리에 담가 그 속에 숨어 우리 꽃이나 잔뜩 피워볼까

 

나무들이 초록 입술을 뱉어낼 때 구름 한 모금 입에 물고 여름이 귓속으로 흘러든다 당신 얼굴에 박혀있는 열 개의 꽃들이 하얗게 젖고 있다 지금은 무르익은 언어로 방금 도착한 마음을 위로할 때

 

계간 『열린시학』 2016년 여름호 발표

 

 


 

정용화 시인

충북 충주에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전문가 과정 졸업.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재학중. 2001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가 있음. 현재 안양 여성문학회 회원. 좋은시문학회 회원. 민족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