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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안나 시인 / 단상(斷想)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7.

서안나 시인 / 단상(斷想)

 

 

창가에 내려앉아 실눈을 뜨는 빗소리. 네 침묵이 서글프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하지말기. 멕시코인의 몸매처럼 따스해 보이는 커피 잔만 생각하기. 무료하면 다리를 묘하게 꼬고 앉아 먼지 앉은 책들을 펴들 것. 활자는 읽지 말고 비에 젖은 숲을 헤치듯 헤쳐 나갈 것. 활자의 가지마다 늘어지는 넝쿨식물. 희디힌 꽃잎들은 그리움의 관절 속으로 떨어지고. 그래도 생각나면 곁에 없는 당신을 땅속에 묻어버리고 청개구리처럼 개굴개굴 혼자 웃을 것. 창가에 걸터앉은 빗소리가 하루 종일 개굴개굴 운다.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시

 

 


 

서안나(徐安那) 시인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와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가 있음. 현재  <서쪽> 동인이며 한양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