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차주일 시인 / 동대문아파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30.

차주일 시인 / 동대문아파트

 

 

1964년생 동대문아파트 한가운데 허공이 박혀 있다.

6층짜리 콘크리트 네모가 웅크린 원으로 보인다.

어디쯤 심장 하나 꿈틀거리고 있을 것 같다.

허공은 균열이 찾아낸 구석에 모세혈관 같은 햇빛을 박는다.

심지어 반죽은 화분에 박혀 석류의 감정을 설계한다.

뿌리박는다는 건 이생에 후생을 축조하는 일인가 보다.

거의 다 탄 연탄 위에 새 연탄을 올려놓듯

열매는 뿌리가 만든 상층부일 뿐

가지는 여전히 뿌리박는 공법으로 그늘을 쌓는다.

햇빛 한 무리 날아와 석류에 박힌다.

뿌리인 양 아래쪽으로 휘었던 가지가

도면대로 돌아와 그늘의 평수를 지켜낸다.

씨앗은 이 휘청거림을 눌러쓰는 깊이로 기억한다.

기억이란 누군가 그려둔 도면을 내 눈 속에 펼치는 일인가 보다.

9평짜리 천정에 박혀 있는 윗집 연탄화덕

수십 년째 허공을 태우고 있다.

이 요철에 꿈을 맞추었던 사람들이 보인다.

추위를 보듬는 자세로 웃음을 기르는 종족이

아랫집 천정을 파 허공을 박지 않았다면

어찌 위층에서 온기를 기를 수 있었겠으며

대면 없던 옛 사람들이 내 기억에 박혀 있겠는가.

철거 공사를 멈추고 연탄화덕을 남겨둔 뒤부터

뿌리 깊이로 허공을 그려 넣는

건축 설계사의 자세를 흉내 내곤 한다.

어떤 까닭으로 낯모를 그가 내 기억을 설계하는 것인지

빈 칸을 벽돌처럼 쌓아놓은 원고지 앞에 앉으면

나는 가끔 나에게 묻곤 한다.

너는 누구의 감은 눈에 박혀

누군가의 기억 하나 설계하고 있는지

 

계간 『포지션』 2017년 봄호 발표

 

 


 

차주일 시인

1961년 전라북도 무주에서 출생. 200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천년의시작, 2010)이 있음. 2011년 윤동주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