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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재연 시인 / 별별 무늬의 담요와 냄비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9.

이재연 시인 / 별별 무늬의 담요와 냄비

 

 

버건디색이 다 빠져나간 저녁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천 쪼가리들을 가지고 논다 바람이 녹옥수 같은 치마를 펼친다

 

오래된 거울과 함께 주문을 외우면 사라진 사람들이 나올까 땅굴이 나올까 중국이 나올까

중국과 모래가 뒤섞인다 사라지지 않는 불면과 좀비들, 살아있잖아 살아있으니까 창유리가 뛰어내린다

 

흔들리지 않은 것처럼 레몬이 움직인다 새가 날아간다 선택할 수 있는 노래와 친구와 책과 쓸모없는 가슴의 파문을 따라간다

 

압사한 추억 끝에 여름이 서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면 원소가 될까 구석이 될까

 

아름답고 아름다운 귀가 큰 종족,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오늘은 가죽을 입는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분다 담배가 떨어지자 계절이 바뀐다

 

꽃이 지자 다시 독서 독거 동독 그리고 월요일,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만나 함께 쓰레기를 버린다 손을 씻고 각자 흩어져가는 우리에 관한 모든 것, 다 알고 있는 별별 무늬의 담요와 냄비

 

계간 『시작』 2016년 여름호 발표

 

 


 

이재연 시인

전남 장흥 출생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12년 제1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으로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실천문학사, 2017)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