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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찬옥 시인 / 닮은꼴이다 술과 목련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30.

김찬옥 시인 / 닮은꼴이다 술과 목련은

 

 

  술이 만개한다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되어

  준비운동도 없이 문 밖 세상으로

  곧잘 넘나들이를 한다

  내 키보다 높이 뛰어 오르다

  낯선 바람 끝에 부딪혀

  제 빛을 잃고 돌아선 목련 꽃잎이 된다

 

  몸이 발그레 물오른다

  규격이 꼭 맞는 마음도

  삐걱대는 나사 같은 사랑도

  수면 위에 기포를 만들며

  동글동글 둥글둥글 원형이 된다

  후미진 곳에 맺힌 망울들도

  풀어진 빛에 껍질을 벗어내리고

  하얀 목련송이로 툭툭 터지는

  만개한 꽃이 된다

  접었던 마음을 펼쳐보인 곳은

  기워 넣은 흠집이 더욱 아름답다

  끊어진 곳도 고리를 끼어

  술_____술 새로운 길이 열린다

 

 


 

 

김찬옥 시인 / 루이즈 호수에서

 

 

  보우강 물줄기

  병풍으로 감싸고 있는 록키산맥

  물안개 여인의 몸짓인양

  듬직한 산맥 허리춤을 감싸안고

  높은산 봉우리 봉우리엔

  시간을 초월한 듯

  때도 없이 눈꽃을 피운다

 

  눈꽃은 스러져도 줄기를 만들어

  그리움 같은 호수가 되는데

  나는 등나무 줄기가 되어

  잎만 무성한 채

  어느 하늘을 가리지나 않을까

  저마다 던진 느낌표는

  옥빛 물살 위에 오선지를 그리며

  한 소절 한 소절 울려 퍼지고

  은어가 되고 싶은지

  내 안에선 껍질을 깨고

  다이빙하는 것이 있다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몸을 씻는 것이 있다

 

월간 『현대시학』 1996년 11월호 발표

 

 


 

 

김찬옥 시인 / 바람 끝에 헐린 봉분

 

 

  무덤가에 억새꽃이 만발하다

  싸아한 바람,

  한얀 꽃의 맨몸을 핥고

  무덤을 핥고

  언젠가 내 안에도 자리한

  봉분의 살갗을 샅샅이 핥아댄다

  망할 놈의 바람,

  이미 잔디가 무성한 봉분을 왜 건드려

  이제는 간신히 뼈대나 남아있을 아픔을

  이 가을 속으로 떠밀어 보내나

 

  티끌 하나도 빛으로 퍼져나가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날

 

  아픔을 잉태하는 눈빛이 미심쩍어

  서둘러 내 안에 묻어 버리고 말았는데

  어둔 마음만 수시로 발라주어

  단단한 봉우리가 되고 말았는데

 

  오늘 바람의 혀 끝에 봉분이 헐리고 있다

  무덤 곁에서

 

  억새의 꽃빛으로 하얀 고름이 흘러내린다

 

 


 

 

김찬옥 시인 / 까치노을

 

 

  포구에 닻을 내리고 앉아

  빈 개펄이 된다

  오늘은 어떤 빈 자리를 메꾸며

  내일은 어떤 가슴에 썰물이 될까

  너의 물살이 내안에서 빠져

  두 개의 샛강쯤은 건너갔으리라

  썰물이 그의 흔적을 다 거두어가지 못했다

  서두르다 빠뜨리고 간 너의 몸짓들이

  듬성듬성 골이 패인 곳에

  허리 꺾인 수초로 남아

  까치노을로 번득이고 있다

 

  어둠이 한 음씩 높아만 갈 때

  새벽으로 찾아온 너의 미소

  접혀진 어깨에 날개가 되어

  투명한 하늘을 열어주었는데

  너는 갔지만 향기는 남아

  오늘도 물안개로 피어오른다

  지는 시간 속에도 사위지 않는

  기이 뿌리 내린 그림자

  네가 떠난 그 집을 비우지 못하고

  연어의 산란 때를 기다린다

  남몰래 수문을 열어 놓고

  먼 물살을 끌어 올린다

 

월간 『현대시학』 1998년 2월호 발표

 

 


 

김찬옥 시인

전북 부안에서  출생. 1996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 『벚꽃 고양이』와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