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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지현 시인 / 송곳니 자국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9.

권지현 시인 / 송곳니 자국

 

 

  초저녁 골목 귀퉁이에서 걸음이 꺾인다

  거기 송곳니를 드러낸 개가

  끝장을 보자고 공중에 뜬 철망 흔들어댄다

  이웃집 개들도 덩달아 컹컹 짖어대고

 

  철망을 긁는 앞발톱이

  두 걸음 밖에 선 얼굴을 할퀸다

  아니야 나는 아니야, 손사래 치는 나를

  송곳니에 허벅지를 물린 나를

  어금니에 이미 납작해진 나를

  철망 안의 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패대기친다

 

  흩어지는 정신을,

  으스러지는 몸을 모아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 휴대폰 셔터를 누른다

  송곳니가 번쩍, 이마 앞에서 찍힐 때

  아무렇지 않은 접시꽃도 귀나간 접시처럼 번쩍였던가

 

  악다구니로 덤벼드는 소리는

  제 몸이 상하도록 몸부림친다

  컹컹컹컹, 송곳니 자국을 공중에 찍어댄다

  녹슨 철망을 갈기갈기 찢어내고 컹컹컹컹,

  소리가 허공을 물어뜯으며 달려간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손 흔들고 가는 나는

  송곳니에 허벅지를 물리지 않은 나는

  어금니에 눌려 납작해지지 않은 나는

  등 뒤로 달려드는 소리보다 천천히 걸어간다

 

  먼 곳으로 개 짖는 소리가 돌아간다

 

계간 『시작』 2016년 여름호 발표

 

 


 

권지현 시인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