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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분홍 시인 / 거미집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30.

김분홍 시인 / 거미집

 

 

하늘에 돌려 박은 나사문양이 남아있다

 

기둥과 기둥사이, 바람으로 벽을 바른다 바람은 휘발하고 있다

거미집이 바람에 무너졌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보일러 열선 같은 거미줄에 햇빛이 돌기 시작한 뒤부터다

 

하루살이 떼를 달력으로 걸어놓고 거미집은 평수를 넓혀나간다 거미집 아래 그늘에서 싹튼 호박도 담벼락에 촉수를 돌려 박으며 골목을 늘인다

 

위도와 경도를 모방한 애호박이 자라나서 아랫목의 장판으로 잘 달궈지면 늙은 호박잎이 그늘을 찢어버린다

 

호박을 들어 올려 그늘이 이동 경로를 탐색한다

꽃 피었던 밑동에 먼동 들춘 양지만큼 얼룩이 퍼져 있다

 

그 전모를 밝히기 위해 익은 호박을 가른다 새벽에 나가 음지를 경작한 사람들의 왕래한 골목마다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나사문양을 잘게 삐져 며칠째 말린다

쪽방 창문을 밝혔던 누군가의 빛이 찢어지고 있다

 

함정을 던져두고 기다림을 포박한다 그늘과 빛은 평면이고 식탁과 침대도 평면이다

평면으로 모두 묶어둔다

 

바닥에 앉았지만 그녀는 날개가 없다

 

계간 『포지션』 2016년 겨울호 발표

 

 


 

김분홍 시인

충남 천안에서 출생.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