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숙자 시인 / 시간의 충돌
천 년 전에 출발한 시간이 있다 천 년 전에 출발한 그 시간은 무수한 시간과 시간 사이를 뚫고 이곳에 왔다 내 곁을 지나는 지금 이 순간도 천 년 전에 출발한 시간일 거야
천 년 전 그 시간은 내가 빚었을 수도, 다른 누군가가 보낸 것일지도 몰라 희한한 맛과 모양과 명암이 내재된 시간 ; 시간들
때론 꽃이거나 바위이거나 살쾡이이거나 달…빛…이지만 어떤 시간도 나를 향해 출발한 이상 무를 수 없지 시간에게 되돌림이란 ‘절대불가’ 아닌가 비켜서 볼까 애쓴들 그 애씀마저도 천 년 전에 출발한 현재일 따름
며칠 전, 투신 자살자가 행인을 덮쳐 2인이 즉사했다…는, 그 어처구니를 설명할 길이란 부재. 우연(偶然)이라고 밀어붙여도 석연치 않다. 천 년 전에 출발한 시간과 시간이 된통 엉킨 거라고 밖엔…,
시간에도 관성이 있는가보다 천 년을 달려온 속도와 방향이라면 휠 틈도 꺾을 수도 없는 거겠지 감각(感覺)을 넘어선 그 시간의 실체가 바로 나, 자신의 신체 아닐까?
가령 어느 날 내가 죽었다 해도 나를 통과한 시간만큼은 더 멀리 가고 있을 거야 지구를 벗어난 어딘가로, 수수 광년 밖으로 거기 또 내가 서 있을지도 모르지
격월간 『시사사』 2016년 7~8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영택 시인 / 칸나 속에 불꽃이 있다 (0) | 2019.11.30 |
|---|---|
| 김도이 시인 / 거미의 각도 (0) | 2019.11.30 |
| 송연숙 시인 / 행성, VFTS 352 (0) | 2019.11.30 |
| 김분홍 시인 / 거미집 (0) | 2019.11.30 |
| 강서완 시인 / 사과를 쪼개면 외 1편 (0) | 2019.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