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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숙자 시인 / 시간의 충돌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30.

정숙자 시인 / 시간의 충돌

 

 

  천 년 전에 출발한 시간이 있다

  천 년 전에 출발한

  그 시간은

  무수한 시간과 시간 사이를 뚫고 이곳에 왔다

  내 곁을 지나는 지금 이 순간도 천 년 전에 출발한 시간일 거야

 

  천 년 전 그 시간은 내가 빚었을 수도,

  다른 누군가가 보낸 것일지도 몰라

  희한한 맛과 모양과 명암이 내재된 시간 ; 시간들

 

  때론 꽃이거나 바위이거나 살쾡이이거나 달…빛…이지만

  어떤 시간도 나를 향해 출발한 이상 무를 수 없지

  시간에게 되돌림이란 ‘절대불가’ 아닌가

  비켜서 볼까 애쓴들 그 애씀마저도

  천 년 전에 출발한 현재일 따름

 

며칠 전, 투신 자살자가 행인을 덮쳐 2인이 즉사했다…는, 그 어처구니를 설명할 길이란 부재. 우연(偶然)이라고 밀어붙여도 석연치 않다. 천 년 전에 출발한 시간과 시간이 된통 엉킨 거라고 밖엔…,

 

  시간에도 관성이 있는가보다

  천 년을 달려온 속도와 방향이라면

  휠 틈도 꺾을 수도 없는 거겠지

  감각(感覺)을 넘어선 그 시간의 실체가 바로

  나, 자신의 신체 아닐까?

 

  가령 어느 날 내가 죽었다 해도

  나를 통과한 시간만큼은 더 멀리 가고 있을 거야

  지구를 벗어난 어딘가로, 수수 광년 밖으로

  거기 또 내가 서 있을지도 모르지

 

격월간 『시사사』 2016년 7~8월호 발표

 

 


 

정숙자 시인

1952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뿌리 깊은 달』과  산문집 『밝은음자리표』, 『행복음자리표』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