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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여원 시인 / 호구(狐口)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

이여원 시인 / 호구(狐口)

 

 

호구는 나에게 출발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손바닥과 눈빛을

돌려세우지 못하는

몰인정이란 단어

 

사냥감을 놓치고 헉헉거리는 숨을 내몰아쉬다 뱃속의 굶주린 짐승이

의지를 버리고 탈진한 몸으로 기대앉은, 부드럽고 연한 감정의 입구를

훅 당기면 바깥으로 내장부터 허물어진다

 

뒤집어진 옷처럼 속 피부로 살아가는

호구를 지척에 두고 있다

 

사냥 성공률이 5%인 절대적 빈곤율의 호구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은 짐승

이빨과 다리는 동병상련으로 늙어가고

고단한 호랑이 두어 마리

슬그머니 빠져 나갈 궁리를 하다보면

문안에 속하며 바깥에 귀를 세워 둔 문밖의 먹잇감은

자신의 속살에서 가끔은 비릿한 냄새를 맡는다

호구는 구조의 바깥에서

얼기설기 구석으로 내 몰려 있다

 

얽혀진 숲속의 질서에 도착해서는

먹잇감으로 끌려가는 호구

가파른 산행 길, 목이 쉰 포효는

절대빈곤의 발바닥을 들어올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7년 5월호 발표

 

 


 

이여원(李如苑) 시인

진주에서 출생. 201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